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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수의 인터스텔라] "모든 인간이 다 우주" 음악계 노벨상 탄 작곡가 진은숙

김지수의 인터스텔라 모든 인간이 다 우주 음악계 노벨상 탄 작곡가 진은숙 5월 18일, 음악계 노벨상 지멘스상 수상식 열려 진은숙 나는 인생 전체가 슬럼프였다 오늘 노벨상 받아도 내일 또 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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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는 사람도 자기를 해치기 직전까지 갑니다(웃음). 몸에 먼지처럼 붙은 그 자학을 어떻게 털어냈나요?

“음악 없이는 못 살 것 같으니까(웃음). 음악만이 나의 인생이고 해방구니까. 음을 붙들고 있으면 무슨 마약 한 것 같았어요. 그게 뭐 엄청 대단한 것도 아니에요. 그냥 머리부터 발끝까지 음악에 푹 잠겨 있는 거죠.

그런데 세상일이 다 그렇지만, 음악 하는 사람도 두 부류가 있어요. 음악이 곧 삶인 사람, 음악으로 돈과 유명세를 바라는 사람…”

─창작과 성공이라는 말이 잘 붙나요?

“잘 안 붙죠. 성공을 해도 그 성공이 너무 미미하니까. 유명해져도 그 유명세를 유지하지 못하는 사람도 많고요. 향유의 시간이 너무 짧잖아요. 그래서 오늘 지멘스상을 받아도 내일 또 머리를 움켜쥐고 책상 앞에 앉아요. 그 고된 일을 왜 하느냐고요? 그게 삶이니까.”

‘그게 삶이니까’라는 말이 산뜻한 체념처럼 귓가를 울렸다.



─작곡가로서 어떤 소리를 추구하세요? 매번 작품이 야심만만하고 스펙터클해서 에너지 소모가 크겠구나 싶었습니다.

“전에 없었던 다른 구조, 다른 세상을 추구합니다. 완벽하다는 착각으로 곡을 쓰는 사람도 있지만 난 늘 불완전해요. 그런데 그게 또 나의 문제입니다. 음 몇 개로 사이즈가 작은 소품을 쓰면 내가 나를 인정을 안 해요. 항상 맥시멈을 다해 소리를 질러야 내 존재를 알아주는 그런 세상을 살아오다 보니…

그런데 이번 통영 페스티벌에서 비올리스트 앙투안 타메스티가 연주하는 걸 들으니 한음 한음에 우주가 다 들어있더라고. 창작도 저렇게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싶었어요.”




─당신의 영혼의 저장고엔 무엇이 들어 있습니까?

“복잡해요. 나는 내면에 소용돌이가 많은 사람이라… 지금은 또 2025년에 완성할 오페라 물리학자 볼프강 파울리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 차 있죠.”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이 ‘오펜하이머’를 만들었듯이, 진은숙만의 물리학 오페라가 나올 거라고 예상했어요. 어쩌면 평생 이끌렸던 주제지요? 시, 혼성합창, 파이프 오르간, 어린이 합창, 대편성 관현악으로 우주 탄생의 비밀을 열었던 ‘별들의 아이들의 노래’에서부터 시작해서요.

“수학과 물리학과 우주 천체에 관해서는 늘 관심이 많았어요. 주인공이 물리학자지만, 한 천재가 인간이 도달할 수 없는 신의 영역에 접근하고 싶어 하는 그런 열망을 담았어요. 물리학자 파울리가 자신의 꿈을 해석하기 위해 칼 융과 교류했다는 에피소드에 착안했습니다.”





─늘 느끼는 거지만 소리의 입자감에 서스펜스가 더해져서 이야기의 사이즈가 증폭된다는 느낌을 받아요. 음악이 커질수록 더 강한 사람이 되어간다고 느끼나요?

“글쎄요. 그건 모르겠어요. 제 생각엔 한 인간이 다 하나의 우주가 아닐까 합니다. 달리 말해 작품이 커지고 좋아진다고 해서 내가 더 커지고 좋아지는 것 같지는 않아요. 행위자로 볼 때 음악가 진은숙과 생활인 진은숙은 분리되지 않아요. 밥도 하고 곡도 쓰고 청소도 하고 피아노도 치죠.

제 몸엔 사랑과 학대가 함께 웅크리고 있고, 저는 선악의 경계를 넘어 한 인간의 정신세계가 얼마나 복잡한가에 몰두하는 것 같습니다.”

나아가 인격과 재능이 통합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을 화두로 우리는 몇몇 영화감독과 그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박찬욱의 ‘헤어질 결심’과 봉준호의 ‘설국열차’와 김기덕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같은 작품들에 관해.

변방에서 객사하는 것으로 스스로를 벌했던 김기덕, 동화적 웅장함 속에 동시대의 양심을 벼려 넣는 봉준호의 선량함, 박찬욱 영화의 바로크적인 아름다움에 대해. 한편 진은숙은 박찬욱이 ‘헤어질 결심’의 이야기의 사이즈를 더 키우지 않은 것을 아쉬워했다.

─이야기의 크기를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합니까?

“영화건 그림이건 음악이건 그 작품이 포함하고 있는 크기가 있어요. 가령 베토벤도 별 볼 일 없는 것 같은 소재로 피아노 소나타를 시작합니다. 하지만 그가 만들어내는 우주는 굉장하잖아요. 모든 분야에 그렇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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