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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윤이라는 이름

‘무명성 지구인’은 <싱어게인> ‘30호’로 나타나, ‘이승윤’이란 이름으로 우리의 문을 두드렸다. 어둠 속 무명의 주파수로 지글대고 있던 그는 이제 소리 높여 외칠 준비가 됐다. 주류와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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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구석 음악인’이 세상 밖으로 나와 구찌를 입고 화보를 찍었네요. 기분이 어떤가요?
‘옷이 날개다’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네요. 정직하게 말하자면 구찌가 비싼 브랜드라는 것 외에는 전혀 몰랐거든요. ‘이걸… 나보고 입으라고?’ 생각하며 입었는데,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정말 예뻐요.

현장에서 각선미에 대한 칭찬이 끊이질 않았어요.
하하. 오늘 입은 것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게 쇼트 팬츠예요.

은근히 자기만의 패션 철학이 있어 보이던데?
‘똥폼’이죠. 처음엔 뜨악하지만 보다 보면 정이 가는 스타일.

<싱어게인>에서 원래 지난해까지만 음악을 하고, 안 되면 접으려고 결심했다고 했었죠.
전 세상에서 제일 믿지 않는 말이 ‘난 이걸 자기만족으로 하는 거야’예요.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가장 피드백을 원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서른두 살까지 아무런 성과도 소득도 없이 음악을 한다는 건 자신도 지치지만 주변에도 굉장히 민폐를 끼치는 일이라 미안했죠.

접으면 뭘 하려고 했어요?
계획은 없었어요. 음악이 안 되면 이걸 해야지라고 생각한 순간 음악에 투신하지 못할 것 같아서. 불나방처럼 살아보고 안 되면 다음 삶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죠.

자작곡 ‘무명성 지구인’에서 ‘이름이 있는데 없다고 해, 명성이 없으면 이름도 없는 걸까’ 자조해요. 그런데 ‘30호’로 시작해 벼락처럼 ‘이승윤’이란 유명 인사가 되었네요.
혼란스러운 건 사실이에요. 마이너리티에 있었던 사람이 갑자기 메이저로 왔으니까. 이렇게 말하면 많이 서운해하시겠지만, ‘유명’이라는 말이 마냥 달갑고 기쁘지만은 않아요. 제가 기존 자작곡에서 말하던 것들, 대변해온 것의 반대편에 서는 것을 경계하고 싶어요.

어떤 걸 가장 경계하고 싶은가요?
제 안의 날이 무뎌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다른 쪽에 편입됐다고 해서 기존의 것을 내팽개치지 않고, 계속 경계선에 있고 싶어요. 정체성을 넓혀 나가야지, 다른 정체성이 되어버리고 싶지는 않거든요.

이쪽과 저쪽 사이에서 말이죠.
그렇죠. 다만 전 이분법 또한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린 패배자고 승리자들은 나쁜 놈들이야”라고 말하는 건 매혹적이고 쉬운 방법이죠. 저는 마이너리티에 있었을 때도 애매한 캐릭터였고,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채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각적으로 하고 싶어요. 단지 제가 바라볼 수 있는 면이 하나 늘었다고 생각하면서.

인디 음악을 찾아 듣는 편인데 ‘이승윤’이라는 뮤지션의 음악은 접해본 적이 없어요. <싱어게인>의 30호가 빛난다 해서 당신의 이전 앨범들을 찾아 들어보고 놀랐죠. 의문이 들었어요. 이 가수를 왜 몰랐을까? 산업적 문제는 아닐까?
비주류 신 역시 주류 신과 동일한 구조예요. 수요층이 많고 적고의 차이일 뿐. 평론가들이 선정했다는 것, 비주류의 세계에선 가장 큰 타이틀인데 인디 음악에 권위를 부여해주시는 분들의 취향이 협소한 편인 것 같아요. 비주류에서도 비주류가 있는 거죠. 저희 음악처럼.

플랫폼의 문제도 있었네요.
사실 제가 덜 부지런했던 게 제일 커요. 음악 외적으로 자기 PR을 하지 않았어요. ‘존심’ 때문에.

소속사 찾아볼 생각은 안했어요? 인디 레이블도 꽤 많은데.
맨 처음엔 제 음악을 보내봤어요. 그런데 ‘읽지 않음’이 사라지지 않더라고요. 나중엔 제 음악에 어느 정도 입김을 발휘할 수 있는 수준이 됐을 때 소속사를 찾고 싶었죠.

어찌 됐든 결국 만났네요. 아이러니하게도 <싱어게인>이라는 주류 매체를 통해.
저 개인에겐 참 감사한 일이죠. ‘아, 내가 진짜 열심히 했더니 어쨌든 기회가 오는구나’ 여길 수 있는 부분인데, 다른 분들에게도 “너도 노력하면 될 거야”라고 감히 말할 수는 없어요. 오디션 프로그램이라는 포맷이 안 맞는 분들이 있을 것이고, 그중에서도 뛰어난, 좋은 음악을 하는 분들이 계실 테니까.

지금 제일 간절한 건 뭔가요?
전 보컬리스트나 작곡가가 아니라, 싱어송라이터로서 정체성을 강하게 지니고 있어요. 그렇기에 제 노래를 많은 분들께 들려드리고 싶은 열망이 있죠. <싱어게인>에선 다른 분들 노래를 빌려와서 부른 거니까요.

10년 전, 대학가요제 입상을 했었죠. 언제부터 가수를 꿈꿨나요?
고등학교 때부터. 음악을 만들었더니, 만들어지더라고요. ‘와씨, 나 음악 해야겠다’ 막연히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방구석에서 기타 치고 노래해서 데모 테이프를 만들어놓고, 부끄러워서 누구한테도 안 들려주고 그랬죠.

왜 노래하고 싶었어요?
이 질문엔 답을 못 하겠어요. 다른 질문들엔 멋있는 척 답해도 이건 이상하게 못 하겠더라고요. 그냥 하고 싶었어요. 그랬던 것 같아요.

“‘유명’이란 말이 마냥 달갑지만은 않아요.
제 안의 날이 무뎌지지 않았으면 좋겠고,
계속 경계선에 있는 사람이고 싶어요.”


스스로 노래를 잘한다는 건 언제 느꼈어요?
<싱어게인> 나와서요. 사람들은 소위 말해 ‘배운 창법’을 좋아하잖아요. 음악 하는 친구들끼리 맨날 자조적으로 하는 말이 있어요. “크리스 마틴이 한국 오면 데뷔 못한다.” “존 레넌은 오디션 1차 탈락이다.” 제가 그분들만큼 개성 있다는 말은 아니지만 제가 노래를 잘한다는 생각은 못했어요. 단지 제 목소리를 좋아할 사람도 어딘가에 있을 것이라 생각했죠. 스스로 가수라기보단 싱어송라이터로 여기다 보니, 가창력에 대해선 크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심사위원분들이 좋은 말씀을 해주셔서 이제는 조금 덜 부끄럽게 여기게 됐어요.

자작곡 ‘무얼 훔치지’에서 ‘낡은 마음에다 노래는 밝은 미소를 건네와, 왜 내가 바라봐도 녹슬지 않는지’라는 대목을 듣고 느꼈어요. 아무리 응답받지 못해도 음악을 사랑해왔구나. 그 사랑은 어떻게 녹슬지 않던가요?
<싱어게인> 이전의 음악은 이런 느낌이었어요. 제가 너무 사랑하는 존재가 있는데, 맺어지지 않는 순간이 계속 이어져요. 그저 바라만 보죠. 마음을 접어야 하는데 접히지 않는 존재였어요. 제게 음악이란 꿈 이상이죠.


‘무명성 지구인’ ‘게인 주의’ 가사를 보면 이승윤이 뭘 중요하게 여기는지 느껴져요. 어둠 속에 묻혀 있는 이름 없는 개인들, 그들의 지글거림에 계속해서 주목하죠.
그건 제가 살아온 삶이기도 하고, 제가 삶을 바라보는 시각 자체기도 해요. 빛과 어둠, 강자와 약자, 승지와 패자라는 이분법으로 말하고 싶진 않아요. 전 뭔가를 단칼에 딱 잘라서 정의 내리거나 한마디로 퉁치는 걸 싫어하거든요. 빛 안에서도 소외되는 사람이 있고, 어둠 안에서도 소외되는 사람이 있어요. 그 스테레오타입에 들어맞지 않아서요. 한두 문장으로 수렴되는 세계는 폭력적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그 문장에서 벗어나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그분들과 함께 행복하고 싶고요.

같이요?
네, 혼자 행복해서 뭐 합니까. 나중에 다 후회하던데.

‘관광지 사람들’은 동시대 예술가로서 고민이 드러나는 곡이더군요. ‘여기에 사는 것은 우린데 실은 죽은 사람들과 관광객들이 주인이지’ ‘벽의 여백엔 작품이, 밖의 공백엔 기념품이’라는 가사가 말하는 지점, 미술가들도 하는 고민이죠. 죽어야 값이 오르는 게 미술이잖아요. 1970년대 쿠사마 야요이도 모마 미술관 앞에서 나체 시위를 하며 “죽어 있는 사람들 그림만 저기에 걸어놓고 지금 살아 있는 작가들의 작품은 봐주지 않는다”며 시위를 했으니까요.
소름 끼치네요. 공감해요. 해외에서 한 미술관에 갔는데, 그 앞에서 많은 화가분들이 전시된 유명한 그림을 모작하고 있더라고요. 그분들의 기분은 어떨까 생각해봤어요. 음악도 마찬가지고, 비단 예술이 아니더라도 세계는 죽은 언어들로 쌓여 있어요. 우리 개개인의 삶은 그것들을 지탱하면서 존재하죠. 우리가 죽은 다음에야 우리의 언어에 다음 세대가 귀를 기울일까요?

거리의 화가들이 과거의 명화를 모작하는 게 아니라, 동시대에 자기 그림을 그리고 그 그림이 주목받을 수 있는 시스템의 필요성에 대해 말하는 거죠?
네. 제가 있던 세계에서 싱어송라이터는 아무도 필요로 하지 않았어요. 한국엔 정말 수많은 행사가 있어요. 행사에서 원하는 건 저희의 노래가 아니라 유명 가수의 신나는 노래죠. 하지만 저는 웬만해선 부르지 않았어요.

커버곡을 부르지 않던 가수가 <싱어게인>에 나온다는 것은 타협이었겠어요.
타협이란 말은 거창해서 쓰지 않았지만, 사실은 타협보다는 더 큰 자존심을 버리는 일이었어요. 아이러니하죠. 그래서 지금 혼란스러운 겁니다.


하지만 <싱어게인>에서 커버한 곡들은 당신만의 색깔로 편곡되고 소화돼서 새로운 노래를 듣는 것 같았어요.
아이러니하지만 재미있더라고요. 조금 짜증이 날 정도로. 하하하. 가장 편곡적인 재미를 느낀 건 ‘Chitty Chitty Bang Bang’이었죠. 모든 곡을 적극적으로 편곡했지만 그 곡은 정말 산산조각 내어 재조립해 만들어냈던 무대예요.

스스로를 ‘질투가 원동력인 가수’라고 소개하기도 하죠. 가수이기 앞서 좋은 리스너기에 할 수 있는 말일 거예요. 어떤 가수들을 질투해요?
다빈치도 미켈란젤로를 질투했는데, 제가 질투를 안 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하하. 저는 브릿 팝 세대예요. 비틀스부터 U2, 오아시스, 블러 같은 영국 밴드들을 무척 좋아해요. 요즘 어린 친구들은 잘 안 듣죠. 구성이 단조롭잖아요. A B A B C B 같은 진행에 악기가 추가되는 정도. 그런데 저는 그런 단조로움이 좋아요. 그 안에 지글대는 감정들, 분노가 섞여 있는 게 좋죠.

<싱어게인> 초반엔 칭찬을 낯설게 받아들이더라고요. 오래 응답받지 못한 데서 오는 체화된 체념이었을까요?
맞아요. 체득된 체념이 분명히 있었어요. 비주류에서는 ‘주류 음악 같다’고 하고, 주류에서는 ‘완전히 비주류네’라고 하는,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애매한 음악이었으니까. 초반 라운드에서 들었던 칭찬은 낯설어서 좋게 보셨나 보다, 라고만 여겼어요. 그래서 칭찬해주시면 무조건 반박하는 거예요. 그건 지금도 좀 그래요. 그냥 “감사합니다” 하면 되는 걸 “아니 뭐 그렇게까진 아니에요”라고 아직도 그래요. 이건 좀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스스로를 재평가할 때도 오겠죠?
그렇게 되길 바라고 있습니다. 죽기 전에 언젠가는 진짜 명곡, 명반을 남기고 싶은 욕심이 있거든요. 머릿속에는 이만한데, 보여드릴 때는 쭈뼛거리는 게…, 습관이라 그래요. 말씀하신 대로 체화된 체념 때문에. 하지만 마음속엔 좀 더 큰 게 있어요.

‘영웅 수집가’라는 곡은 제가 가장 일찍 접한 이승윤의 곡이에요. 누군가를 우상화하고 숭배하다 오점을 찾으면 부수어버리는 현 세태를 잘 반영한 노래라 생각했죠. 한 마디로 누군가를 삭제하는 ‘캔슬 컬처’라는 말도 있잖아요.
그 말이 딱 맞네요. 다만 이건 시대를 불문하고 그래 왔던 것 같아요. 누군가를 날 대변해줄 우상으로 만들어 과도하게 찬양하다가, 작은 흠을 발견했을 때 정말로 긍정적인 부분까지 다 부수어버리고, 대중이란 이름으로 파괴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과정이 폭력적일 때가 있다고 생각해요. 내가 이 사람을 싫어하게 된 이유와, 이 사람이 다시는 어디에도 나타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좀 다른 것인데 말이죠.

이제 이승윤도 우상화의 대상이 되었죠. 어때요? 긴장되나요?
저는 차분합니다. 우상화되고 있다는 걸 알고 있고, 제 것이 아닌 많은 요소들이 지금의 절 멋지게 포장해주고 있지만 이 포장지는 언젠가 벗겨질 것임을 알아요. 회사엔 누가 되겠지만 저는 괜찮습니다. 하하하.

동년배 시인들과 친해 보이더군요. 최지인 시인의 시 ‘1995년 여름’을 가사로 한 노래가 좋던데.
인천양조장 2층에서 지인이랑 그 시를 낭독하다가 펑펑 울었습니다. 꼴불견처럼. 시인들의 행사에 초대되어 시로 노래를 만들어본 적이 있어요. 그 행사를 주최한 사람이 최지인 시인이라 친해졌죠. 양안다 시인과도 가까워요.

음악이 시에 도움을 받거나 배울 점도 있나요?
너무 당연하게도 그렇습니다. 저는 시가 가장 앞선 노래라고 생각해요. 시는 가장 1차적인 음악이죠. 그 안에 리듬도, 인간도, 세계도 있고요.

당신의 SNS에서 웃은 두 문장이 있어요. ‘시카고 사람들은 씩 하고 웃는다’ ‘재즈는 곰이 부리고 돈은 아무도 못 번다’ 말맛을 살리는 문장력이던데, 글 써볼 생각은 없어요?
저는 이런 걸 아재개그로 퉁치는 것에 대해 통탄하는 사람입니다. 하하하. 시인분들 보기엔 허접하지만 종이책에 로망이 있어서 책을 써보는 게 꿈이긴 합니다.

“전 초콜릿을 믿습니다.
저는 한순간의 행복을 믿어요.
지금 이 순간처럼요.”


밴드 알라리깡숑 라이브 영상을 보면 생동하는 에너지가 느껴지더라고요. 정말 신나던데요? 보컬이 카혼을 치기도 하고, 기타리스트가 보컬을 하기도 하고.
우린 밴드라기보단 음악을 하는 싱어송라이터들의 연합에 가까워요. 각자의 음악에 영향을 주고받는 진짜 음악 친구. 삶에서도 가장 중요한 친구들이죠.

이승윤은 뭘 멋지다고 생각하나요?
날이 서 있으면서, 포용도 할 줄 아는 것. 자기만의 날을 무뎌지지 않게 품고서, 많은 걸 끌어 안으며 사는 사람을 볼 때 진짜 멋지다고 생각해요. 날만 서 있지도 않고, 좋은 게 좋은 거지 넘어가지만도 않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요.

아티스트로서도요?
맞아요. <싱어게인>을 통해 대중에게 닿을 수 있는 경험을 했죠. 많은 분들께 닿을 수 있는 음악을 염두에 두면서, 제 시선의 날카로움도 잃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렇다고 아무 데나 막 쑤시고 다니겠다는 건 아니에요. 날이 서 있다는 건 그 반대편도 생각한다는 뜻이니까.

이승윤은 뭘 믿나요?
전 초콜릿을 믿습니다. <초콜릿 이상의 형이상학은 없어>라는 페르난도 페소아의 시집이 있어요. 저는 한순간의 행복을 믿어요. 지금 이 순간처럼요.






https://youtu.be/06JMUlHmW6U

https://youtu.be/BbAKsEXW4mg

https://youtu.be/wyDqQcEz1cA

* 절대 완벽주의자가 되려고 하지마라

- 심리학 용어 중에 '병적 꾸물거림morbid procrastination 이라는 말이 있다.
누구나 한 번쯤 당장 내일이 시험인데 공부를 하는 대신 책상 정리를 하거나, 마감이 코앞인데도 인터넷 서핑으로 시간을 보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런 망설임은 선택이나 과제를 앞두고 두려움과 부담감이 클 때 나타나는 정상적인 행동에 속한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을 간혹 그 정도가 심해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을 정도다. 이들은 남들 눈엔 게으른 사람으로 비치기 십상이지만 그들의 내면은 해야 할 것에 대한 불안과 스트레스로 가득하다. 그들은 완벽주의자다. 그들은 실패를 두려워하고, 자신의 흠을 용인하지 못한다. 그래서 머릿속은 온갖 생각으로 넘쳐나지만 정작 그 생각을 옮기는 데는 너무나 많은 시간이 걸린다. 제대로 해내지 못할 것에 대한 두려움과 부담감은 주어진 과제를 실체보다 더 부풀려 과장되게 만든다. 사람들은 부담스러운 것은 외면하고 화피하려는 본능이 있다. 그래서 완벽주의자들은 과제가 주어지면 자꾸만 딴 짓을 하거나 꾸물거리거나 잠으로 도피하는 경향을 보인다.

하버드대학교 심리학과 교수인 탈 벤-샤하르에 따르면 완벽주의자는 삶의 여행을 직선도로로 생각하고 오직 결과에만 초점을 둔다. 그래서 목표를 향해 가는 즐거움을 누릴 줄 모른다고 한다. 실패에 대한 극도의 두려움은 새로운 도전과 모험을 하지 않게 만든다. 그래서 무언가를 시도하기보다 무작정 일을 미루는데 그 핑계로 자신의 게으름을 든다.

시도해보지 않아서 그렇지, 한번 하면 남보다 훨씬 잘할 거라고 자신을 합리화하면서 말이다. 사람들은 보통 어떤 이가 성공했을 때 그가 유난히 똑똑하거나 남다른 재능을 타고났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최고의 자리에 오른 사람들에게 성공은 수많은 경험을 통해 찾은 하나의 방법일 뿐이다. 그들은 기꺼이 실험하고 새로운 도전을 멈추지 않는다. 종종 실패를 겪지만 이 과정에서 좌절을 극복할 수 있다는 믿음과 자신감을 얻는다. 두려워만 하던 실패를 막상 해 보니 그것이 생각보다 별게 아님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실패는 아무것도 아니다. 오히려 실패를 많이 해 본 사람일수록 성공할 확률도 높다. 그만큼 경험을 통해 얻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어느 미대 수업에서는 100개의 시안을 한 번에 제출하라는 숙제를 내 준다고 한다. 뛰어난 작품 하나를 만들기 위해 고심하는 것보다 어떤 것이든 100개를 그리면 그중에 뛰어난 작품이 나올 가능성이 더 크기 때문이다. 미완성을 견디는 것도 습관이다. 그리고 일단 하는 것 자체가 습관이 되면 정교하게 다듬는 일은 비교적 쉽게 할 수 있다. 작은 목표를 이룬 경험들이 쌓이면 어는 순간 최종 목적지에 도달해 있을 것이다. 늦은 나이에 그림을 시작한 중견 화가가 있다. 그는 아무리 지친 날이라도 캔버스에 점 하나라도 찍고서야 하루를 마감한다. 대작도 차근차근 찍은 점들이 모여 탄생 하는 거라며, 그는 자기가 쉼 없이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었던 비결을 설명했다. 그 말을 들으니 우리의 인생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하루가 쌓여 인생이라는 작품을 이룬다. 그 인생의 그림에는 기쁨, 성공, 희망의 색깔뿐만 아니라 고통, 실패, 좌절의 색채도 가득하다. 그러나 멀리서 바라보면 모든 색깔이 조화를 이루어 한 폭의 작품이 된다. 아무것도 안 하면 실패는 없겠지만 대신 성공도 없다. 그리고 죽을 때 가장 후회하는 것은 실패한 일보다는 해 보지 못한 일이라고 한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고 일단 뭐든 시도해 보는 여러분이 되었으면 좋겠다.

출처 : <딸에게 보내는 심리학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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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무조건 상위 10% 안에 드는 방법

건방진 소리 같지만, 난 동료들에게 시장의 90%는 애초에 우리 경쟁 상대가 아니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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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방진 소리 같지만, 난 동료들에게 시장의 90%는 애초에 우리 경쟁 상대가 아니라고 말한다. 동기부여 차원에서 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실제로 90%보다 잘하는 건 일도 아니다. 방법도 아주 간단하다. 그냥 매일 뭔가 꾸준히 하면서 계속 버티기만 하면 된다. 이게 전부다. 신규 팟캐스트의 80%가 6개월을 못 버틴다. 반년만 버텨도 이미 80%보단 잘하는 셈이다.

이게 연 단위로 가면 더 심하다. 난 1년 이상 매일 콘텐츠 올리는 블로그를 거의 못 봤다. 뭐든 1년만 꾸준히 하면 성과가 안 나올 수 없다. 영어 회화 학원에 다닌 적이 있다. 새벽 수업에 등록했더니 딱 2주 만에 나오는 사람이 1/5로 줄었다. 3개월 과정이 다 끝날 때까지 한 번도 안 빠진 건 오직 나뿐이었다. 심지어 선생도 결석한 날이 몇 번 있었을 정도다.

그때 깨달은 건 뭔가 꾸준히 하는 건 그 자체로 특별한 것이고 이렇게 성실할 수 있는 타입은 10%도 안 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난 뭘 하든 90% 정도는 경쟁자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의 근성과 열정이란 유통기한이 라면만도 못하니까. 매일 꾸준히만 해도 대다수를 이길 수 있다니. 이 정도면 도전할 만한 가치가 있지 않나? 근데 꾸준히 하려면 재밌어야 한다.

잘하고 싶다면 자신만의 재미 포인트 하나 정도는 찾아야 한다. 안 그러면 오래 버틸 수 없다. 나보다 열심히 하는 사람은 많이 봤지만, 나보다 오래 하는 사람은 거의 못 봤다. 시간 지나니 제일 잘하는 건 끝까지 남은 사람이다. 오래 살아남는 게 강한 것이고 그러려면 뭐든 스스로 즐길 수 있는 걸 해야 한다. 잘하려고 애쓸 필요 없다. 그저 꾸준히만 하면 된다.

진중권의 교양 돋보기|보드리야르

그가 죽었다, 포스트모던도 죽었다

기호 생산과 소비, 현대인 사유 고찰…이미지가 실재를 대신하는 사회를 탁월하게 분석한 철학자


2007-03-26 10:41:00

영화 ‘매트릭스’. 주인공 네오가 자신을 찾아온 고객을 위해 책장에서 불법 소프트웨어를 감추어둔 책을 꺼내든다. 그 책이 바로 장 보드리야르의 ‘시뮬라크르와 시뮬라시옹’이다. 자신들의 영화에 사상적 토대를 마련해준 프랑스 사상가에게 보내는 워쇼스키 형제의 오마주이리라. 3월6일 보드리야르가 서거했다. 그의 사망 소식을 접하고 1980~90년대 세계를 풍미했던 ‘포스트모던’의 담론도 이제 생명력을 다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게 아닌가 하는 상념이 들었다.
 


기호의 정치경제학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보드리야르는 마르크스 정치경제학을 소쉬르의 기호학으로 고쳐 쓰려는 시도와 함께 이론적 활동을 시작했다. 1960년대에 세계 자본주의는 이미 사물이 아니라 기호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단계로 넘어가고 있었고, 고전적 정치경제학으로는 더는 현대적 생산과 소비를 설명할 수 없었다. 예를 들어 강남에서는 물건이 비쌀수록 잘 팔린다고 한다. 이런 현상은 당연히 수요-공급과 가격의 관계에 대한 고전적 설명을 무색하게 만든다.

비쌀수록 잘 팔리는 것은, 그럴수록 신분의 ‘차이’를 더 잘 드러내기 때문이다. 이는 새로운 생각이 아니어서 이미 오래전에 소스타인 베블런이 ‘유한계급론’에서 지적한 현상이기도 하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100년 전에는 미국 상류층의 소비행태였던 것이 오늘날에는 모든 대중의 소비행태가 된 것뿐이랄까? 오늘날의 소비자들은 ‘사용가치’라는 상품의 물리적 속성보다는 ‘기호가치’라는 관념적 속성에 더 많은 돈을 지불한다.

오늘날 소비자는 상품을 소비하지 않는다. 그들은 상품과 상품의 ‘사이’, 상품과 상품의 ‘차이’를 소비한다. ‘사이’와 ‘차이’를 소비하는 사회에서는 생산 역시 기호적 특징을 띠게 된다. 사용가치의 차이를 만들어내는 기술격차가 줄어듦에 따라 기업들은 점점 더 디자인, 브랜드 등을 통해 차이를 만드는 것을 지향한다. 그리하여 사물이 생산되고 유통되고 소비되던 상품의 경제학은 오늘날 기호가 생산되고 유통되고 소비되는 기호의 정치경제학으로 뒤바뀌었다.
 
 



실재의 사라짐

상품의 가치가 다른 상품과의 ‘차이’로 결정된다는 생각의 바탕에는 물론 소쉬르 기호학이 깔려 있다. 소쉬르는 한 낱말의 의미는 그것이 다른 낱말들과 만나서 이루는 차이에 있다고 보았다. 낱말의 의미가 ‘차이’에 달려 있다면 낱말의 최종적 의미를 찾으려는 시도는 시니피앙(낱말, 기호)의 무한연쇄에 빠져 좌절하고 말 것이다. 기호는 지시(reference)를 잃고 다른 것들과 차이의 놀이를 벌이며 자전하게 된다. “텍스트 밖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데리다의 말은 기호가 최종적 지시를 잃은 상황을 표현한 것이다.

상품의 가치 역시 ‘차이’에 달려 있다면, 사물의 세계에 대해서도 같은 얘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차이의 놀이 속에서 사용가치라는 물리적 속성에 기반을 둔 실재의 견고함은 사라진다. 오늘날 소비는 기호화하고, 상품은 비(非)물질화하고, 생산은 정신화했다. 80년대 들어와 보드리야르는 상품에서 미디어의 이미지로 관심을 전환한다. 이런 전환 속에서도 변함없는 것은 바로 인공적으로 만들어낸 차이의 놀이 속에서 실재는 점진적으로 사라진다는 것이다. 그 생각을 그는 더 급진화한다.

“이라크전은 발발하지 않았다.” 1차 이라크전쟁을 두고 보드리야르가 한 말이다. 사담 후세인은 전쟁을 하지 않고 그저 자신의 병사를 살육의 제물로 바쳤을 뿐이며, 부시는 전쟁을 하지 않고 그저 수백만 톤의 폭탄을 투하했을 뿐이다. 그리고 세계인들이 본 것은 CNN이 중계하는 전폭기 조종사의 모니터에 비친 영상뿐. 거기서 컴퓨터게임 이상의 실재성을 느끼기란 어렵다. 과거에 이미지는 (예컨대 전쟁의 참혹한) 현실을 재현했다면, 오늘날 이미지는 현실을 감추고 나아가 사라지게 만든다.
 


시뮬라크르와 시뮬라시옹

‘시뮬라크르’는 어떤 특별한 종류의 복제를 가리킨다. 복제는 원본을 재현하는 것이다. 하지만 ‘시뮬라크르’는 원본과의 관계가 끊어진 복제를 말한다. 복제 이미지가 원본에서 떨어져나와 자립성을 띠게 될 때까지의 과정을 보드리야르는 이렇게 기술한다. “1. 그것은 심원한 실재의 반영이다. 2. 그것은 심원한 실재를 가린다. 3. 그것은 심원한 실재의 부재를 감춘다. 4. 그것은 어떤 실재로 지시하지 않는다. 그것은 자신의 순수한 시뮬라크르다.”

시뮬라크르는 원본의 존재를 감추고, 그것을 사라지게 하고, 나아가 그것의 자리에 자신을 데려다놓는다. 하지만 보드리야르의 ‘시뮬라크르’는 그저 현실을 대신하는 이미지만을 가리키는 게 아니다. 플루서의 표현을 빌리면, 이제까지 인간은 세계를 ‘주어진 것(datum)’에서 ‘만들어진 것(factum)’으로 바꾸어왔다. 오늘날 우리는 이미 가짜로 만든 인공의 환경에 둘러싸여 살아간다. 이와 비슷한 어조로 보드리야르는 ‘모던’의 역사를 세 단계에 걸친 시뮬라크르의 발전과정으로 설명한다.

첫 번째 단계는 르네상스와 더불어 시작한다. 이때 인간들은 가능한 한 실재와 똑같은 복제를 만들려 했다. 두 번째 단계는 산업혁명과 더불어 시작한다. 산업적 생산은 실재를 생산하되 분업화, 합리화, 기계화 등을 통해 자연적 노동과 별로 닮지 않은 방식으로 스테레오 타입들을 찍어낸다. 세 번째 단계는 정보화 시대와 더불어 시작된 것으로, 여기서 생산과정은 실재적인 것과 아무 관계도 없다. ‘클릭’ 한 번으로 엄청난 액수의 돈이 국경을 넘나드는 주식시장을 생각해보라.

시뮬라시옹은 모든 지시가 사라지고, 현실의 자리에 현실의 기호가 들어서는 상황을 가리킨다. 거창한 얘기지만, 우리가 일상에서 늘 하는 체험이기도 하다. 가령 게임의 아이템을 사기 위해 현실의 돈을 지불할 때, 0과 1의 배열에 불과한 아이템은 그저 가상이 아니라 또 다른 현실이 된다. 진위를 알 수 없는 영상들이 이리저리 복제되어 떠돌다가 사회적 문제를 야기하기도 한다. 이 역시 가상이 곧 현실이 된 예다. 시뮬라시옹은 이렇게 가상 자체가 현실이 되어, 현실과 가상을 구별하는 것이 의미가 없게 된 상황이다.
 


복제와 증식

원본 자체가 복제로 이루어지고, 세상 자체가 이미지로 이루어지고, 현실 자체가 가상으로 이루어져 있을 때 원본과 복제, 세계와 재현, 가상과 현실을 구별하는 사고는 의미를 잃게 된다. 이로써 ‘근대철학’의 재현모델은 무너진다. 시뮬라크르의 자전 속에서 모든 차이는 소멸한다. 이른바 ‘내파(implosion)’를 통해 역사적인 것, 정치적인 것, 사회적인 것, 계급적인 것은 종말을 고한다. 보드리야르가 ‘포스트모던의 사상가’라 불리는 것은 이 때문이다.

보드리야르에 따르면 모던은 차이의 생산으로 특징지어진다. 하지만 차이의 생산이 극한에 이르면, 차이의 생산이 더 이상 새로움이 아니라 동일자의 무한증식만을 낳은 단계에 들어서게 된다. 그가 포스트모던을 묘사하는 데 ‘암세포’와 ‘클론’의 비유를 사용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영화 ‘매트릭스’에 나오는 무한히 증식하는 스미스의 이미지. 이는 차이의 생산이 더는 새로움을 생산하지 못하는 현대사회의 악마적 면모를 표현한 것이리라.

미술에서 포스트모던의 예를 찾는다면, 아마 앤디 워홀의 이미지를 들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작품 속에서 캠벨 수프 깡통, 브릴로 세제 박스, 마릴린 먼로는 끝없이 반복된다. 모든 현대미술에 “무가치하다”는 혹평을 퍼부었던 보드리야르. 유독 워홀만은 높이 평가했는데, 그것은 이 팝아티스트가 자신이 생각하는 포스트모던의 시대정신을 잘 표현한다고 믿었기 때문일 게다. 동일자의 무한증식은 오늘날 우리가 마트의 진열대에서 일상적으로 보는 현상이기도 하다.
 


포스트모던의 종언

보드리야르의 사상은 급진적이다. 사유를 극한까지 밀어버리는 그 과장된 제스처로 그는 늘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지나치게 급진적인 비판은 실천적 보수주의로 귀결되게 마련이다. 정치적인 것, 사회적인 것, 계급적인 것의 소멸을 선언한 후에 남는 것은, 묵시론적 체념과 더불어 현상(status quo)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순응주의뿐. 이 때문에 포스트모던 사상가들은 위장한 보수주의자라는 비난을 받곤 한다.

보드리야르는 “가상과 실재의 구별이 사라졌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기 위해서 이미 그는 ‘가상과 실재의 구별’이라는 플라톤주의적 프레임을 여전히-물론 부정적인 형식으로-사용하고 있다. 이미지의 생산은 이제 ‘복제’에서 ‘생성’으로 넘어가고 있다. 21세기에 펼쳐질 세계는 아마 ‘원본과 복제의 관계’라는 플라톤주의보다 ‘생성과 창조’라는 니체주의로 더 잘 설명되지 않을까? 보드리야르는 죽었다. 그리고 그와 더불어 80~90년대를 풍미했던 포스트모던의 담론도 죽었다.


 

 
문병로 서울대학교 컴퓨터공학부 교수

 

창의성에 대한 관심이 큰 시대다. 성실한 인재보다 창의적 인재를 더 원한다. 이런 창의성에 대한 관심의 크기에 비해 정작 창의성의 본질에 관한 이해는 일천하다. 잘못된 창의적 느낌을 주는 것들이 있다. 튀는 옷과 헤어스타일, 불규칙적인 생활, 개인주의, 거침없는 자기주장, 대학 중퇴나 정규교육 부재… 창의성을 이런 외형적인 특성들과 연관시키는 기사나 포스팅을 본다. 이런 것들은 일부 창의적인 사람들이 드러낸 겉모습의 일부일 뿐, 역방향으로 이런 모습을 가진 사람들이 더 창의적인 것은 아니다.

 

 

창의적 산출물은 하위의 지적 빌딩 블록들을 결합하고 거기에 어떤 새로움이 가미될 때 만들어진다. 산출물의 레벨은 자신이 가진 하위 빌딩 블록들 중 가장 레벨이 높은 것보다 한 단계 더 높아질 수 있을 뿐이다. 그러니 좋은 품질의 빌딩 블록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초등학교 수준의 빌딩 블록을 가진 사람이 발휘하는 창의력이란 초등학교 레벨의 산출물에 국한된다. 창조성은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 자기가 가진 기초에 연동되어 만들어지는 것이다. 조지 바살라는 그의 책 『기술의 진화』에서 새로운 기술이 출현하는 3가지 조건을 들었다. 하부기술들의 다양성, 이들로부터의 선택, 새로움의 가미. 이것은 진화의 핵심 프로세스이기도 하다.

 

 

자기주장도 변변히 하지 못하고, 한번 시작한 일을 싫증 내지 않고 묵묵히 수행하는 사람은 구식 스타일의 인재쯤으로 여긴다. 이런 성향을 가진 직원이나 학생들 중에 충분한 시간이 지나고 나면 갑자기 화려하게 창의성의 꽃을 피우는 경우가 많다. 고급의 산출물을 내기 위해서는 고통스러운 기초 확립의 과정을 필요로 한다.

어떤 대나무는 땅속에서 5년을 준비한 다음 지상으로 머리를 내밀면 하루에 최대 60cm까지 자란다. 이런 면에서 중·고등 교육의 어려움이 있다. 학생이 충분한 기초를 쌓도록 하는 것과 ‘편하게’ ‘행복하게’ 하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것은 양립하기 힘든 면이 있다. 우리 고등학교 수학이 한 예다. 후자의 가치에 집중하여 지속적으로 커리큘럼을 축소해왔다. 결과적으로 AI 시대를 준비하는 가장 중요한 수학적 도구인 벡터와 행렬이 통째로 빠져버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일본에서는 유도리 교육이란 이름으로 이런 철학의 교육을 시도하다가 포기한 바 있다.

 

 

강제적인 프로세스가 없이도 상당한 레벨에 이를 수 있는 학생은 희소하다. 극소수의 특출한 학생들만이 스스로 지적 호기심을 따라 충분한 수준의 기초를 구축할 수 있다. 빌 게이츠나 스티브 잡스가 이런 류의 천재들이다. 그렇지만 그들도 미국이라는 시장에 있었기 때문에 꽃을 피울 수 있었다. 우리는 그런 환경이 아니다. 구성원들이 가능하면 풍부한 지적 빌딩 블록들을 갖도록 하는 확률적 접근법이 현실적이다.

 

 

흔히 토론의 과정에서 창의적 아이디어가 나오기도 하는데 토론도 그냥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기초가 있어야 말이 통하고 빌딩 블록을 주고받고 다른 이의 빌딩 블록 위에 자신의 것을 구축할 수 있다. 사고의 추상화 레벨이 두 단계 이상 차이 나면 대화가 잘 되지 않는다. 호기심도 필수지만 이것도 기초가 있어야 적절한 궁금함을 도출할 수 있다. 결국 이 모든 것이 권태를 참아내면서 고통스러운 기초 확립의 시간을 견디는 성실함과 집요함을 필요로 한다. 많은 창의적인 인재가 이런 지루하고 창의적이지 않은 듯한 과정을 견딘 결과로 만들어진다.

 

 

 

- 문병로, 서울대학교 컴퓨터공학부 교수

 

 

https://www.joongang.co.kr/article/23659580#home

요즘 저는 집구석에서 하릴없이 섀도 복싱을 하면서 이 소리는 입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라며 신이 주신 금쪽같은 시간을 레프트 스트레이트로 날려버리는가 하면, 막 배우기 시작한 기타를 반주 삼아 ‘오빠 생각’을 부르면서 이 노래 소리는 도무지 내 입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라며 인간이라면 낼 수 없는 파열음으로 또 한 번 그 신성한 시간을 두 동강 내버리고 있습니다. 게다가 어제 아버지가 명예퇴직을 하셨다는 사실도 잊은 채, 집에 아무도 없는 줄 알고 헬로비너스의 노래를 목청껏 부르다 들켜, 나도 울고 아버지도 울고 아버지가 PC방이나 가라며 쥐여주신 만원짜리도 울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topclass〉에서 글을 한번 써보라며 지면을 내줬습니다.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을 위한 인터뷰 전문 잡지 〈topclass〉에서 저한테 이 지면을 맡긴 건 ‘그래, 이런 사람도 사는데 당신들도 살아’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서인 것 같아 받았습니다. 아차, 저는 박정민입니다.

2011년 〈파수꾼〉이라는 독립영화로 데뷔해, 얼마 전 개봉한 〈전설의 주먹〉이라는, 웬만한 사람은 다 아는 강우석 감독님의 영화에서 웬만한 사람은 다 아는 황정민 형님의 아역을 연기했습니다. 어린 시절 엄마와 같이 낄낄대며 보던 〈투캅스〉, 친구들과 보고 나오면서 서로가 서로를 ‘개똥파리 같은 새끼’라고 부르게 만든 〈공공의 적〉, 비겁한 변명의 최후를 가르쳐준 〈실미도〉까지. 이외에도 세상에 수많은 작품을 내놓으신 강우석 감독님 앞에서 연기를 한다는 건 신인 배우로서는 매우 놀랍고 경이로운 경험입니다. 덕분에 이렇게 지면도 받아냈으니 감독님 집에 보일러 하나 놔드려야겠어요.

연기를 해보겠다고 극단에 들어간 게 2005년 열아홉 살 때였습니다. 겉멋만 잔뜩 들어 당장 장혁 같은 유명 배우가 될 것 같았(던 한 청년은 바로 그 장혁이 제대하던 2006년 입대합니다)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극단 형과 함께 포스터를 붙이다가 궤변을 들었습니다.

“너 같은 놈 많이 봤어. 발 좀 담그는 척하다가 다 없어져.”

화가 나서 참을 수 없었지만 그 형이 싸움을 잘해서 참았습니다. 이후 배우가 되는 길이 너무 힘들어서 다 포기해버리고 싶은 순간마다 그 형의 말을 되새겼습니다. 누가 이기나 해보자는 마음이었죠. 그러고 보니 연기하겠다고 마음먹은 순간부터 잘한다, 최고다라는 말보다 어쩌면 그 말이 더 큰 거름이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그러니까 어서 주변 후배들에게 지금 당장, 네가 하는 일이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일 집어치우라고 말해주세요. 그럼 그 후배들은 당신을 증오하며 언젠간 당신을 밟고 일어설 겁니다).

그렇게 8년이 지나 어릴 적 그토록 열광하던 감독님들을 만나고, 무턱대고 좋아했던 배우들이 이름을 불러주는,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아직은 조무래기지만, 비실비실하던 촌놈에게 이런 일이 일어날 줄 누가 알았겠어요. 여담으로 충남 예산 출신인 우리 엄마는 <넝쿨당>을 볼 때마다 당신 친구가 유준상 사촌 형이라며 내 귀에 캔디가 박이도록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을 듣다 못한 제가 “엄마 내가 시사회 때 유준상 소개해줄게!”라고 했더니, 엄마는 “아이고 우리 아들 최고다. 뭐 입고 가야 되니?”라고 하셨습니다. 시사회 날 엄마는 예쁘게 차려입고 유준상 선배에게 다가가 단호하게 “내 친구가 그쪽 사촌 형이에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엄마는 ‘유준상’의 당황하는 표정을 보고 행복했을 겁니다.

음, 어쨌거나 저는 앞으로 30년 정도 더 이쪽에 ‘발 좀 담그는 척하려고’ 합니다. 그러다 보면 막판에 기적 같은 버저비터를 넣을지 누가 알겠습니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같은 일이 진짜로 일어날지도 모르잖아요, ‘기적’. 그리고 영화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 주인공의 말을 빌려, 어차피 “평생 동안 무언가를 필사적으로 해야 할 때가 그리 여러 번 오는 게 아니”라면 조금은 즐기면서 살아보려고 합니다. 저는 보통 사람보다 레프트 스트레이트를 잘 날리고, 보통 사람보다 헬로비너스 노래를 맛깔나게 부를 줄도 압니다. 또 어느 순간 필사적으로 살다 보면 엄마 친구가 레이디 가가의 작은 아버지가 될지 누가 알겠습니까. 분명 이 글을 보신 여러분에게도 기적 같은 일이 찾아올 겁니다. 매주 3000원이나 5000원을 투자해 내 손 안의 작은 행복, 6개의 아름다운 숫자를 지니고 다녀도 좋고, 언젠가는 소녀시대 중 한 명과 꼭 결혼할 거라는 자신만의 ‘자긍심’을 지니고 다녀도 좋습니다. 다만, 기회가 왔을 때 단칼에 베어버릴 수 있는 기적 같은 장미칼 하나 정도는 날카롭게 갈아놓으시길 바랍니다.

다 잘될 겁니다.

 

 

- 배우 박정민의 ‘언희(言喜)’, 2013년 07월호

나는 개인적으로 ‘시작이 반’이라는 말을 무척 신뢰하는 편이다. 그런데 그에 못지않게 ‘중간이 가장 넘기기 어렵다’는 것도 자주 느낀다. 무엇이든 언젠가 하고 싶었던 마음을 기억하고 있다면 일단 시작하는 게 어려울 뿐, 시작하고 나서는 시작이 주는 힘에 이끌려가게 된다. 그러나 시작이 반이라는 말은, 달리 말해 나머지 반은 ‘시작의 힘’ 없이 스스로 이끌고 가야 한다는 걸 의미하기도 하는 듯하다.

 

시작이 가장 어렵다고 한다. 하지만 어떻게든 일단 시작하고 나면, 중간을 넘기는 게 또 만만치 않다. 중간쯤 이르러서 포기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어쩔 수 없다. 어떤 일이든지 나름의 성과나 결과랄 것이 제대로 나오려면 시간이 걸리기 마련이니까. 중간까지는 아무런 성과가 없을 수도 있고, 성취감이나 노력의 결과가 전혀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다 보면 슬슬 포기할 타이밍을 재게 되는데, 사실 그때쯤이 비로소 결과라는 게 만들어질 수 있는 토양이 겨우 마련될 시점일 가능성이 높다.

우리는 ‘낙담의 골짜기’를 중간이라고도 부른다. / 출처: 『아주 작은 습관의 힘』

인내심이나 끈기가 있다는 것은 사실 스스로를 의심하지 않는 능력에 가깝다.

 

 

이것 봐, 나는 안 되잖아. 역시 아무 의미 없잖아. 내가 그렇게 힘들게 시작해서 여기까지 왔는데 아무것도 없잖아. 나는 맞지 않는 거야.



이런 의문들이 쏟아질 때, 그냥 믿고 계속하는 것이다. 그렇게 ‘중간’을 넘기고 나면, 서서히 노력의 의미랄 것을 조금씩 만나게 된다. 이해되지 않던 것들이 이해되고, 통합되고, 응용된다. 예전에는 불가능했던 것들이 가능해 보인다. 여러 가지 의미에서의 반응이랄 것을 조금씩 경험하게 된다. 그러면 또 9부 능선까지는 달릴 수 있게 된다. 9부 능선까지 달리면, 대개 마지막까지 가게 된다.

 

결국 많은 일에서 핵심은 ‘중간’을 어떻게 견딜까 하는 것이다. 이 중간의 지옥을 이겨내는 경험을 여러 번 하다 보면, 어떤 일이든 슬슬 ‘중간의 지옥이로군’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이 중간의 지옥을 지나고 나면, 달릴 수 있는 평야가 있다는 것도 믿게 된다.

 

사실, 중간의 지옥에서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하나밖에 없는 것 같다. 그냥 하는 것이다. 마음 속에 어떤 의심이 들고, 의욕 상실의 늪을 헤매고, 절망감이나 좌절감이 앞설 때도 그냥 하는 것이다. 다른 걸 생각하지 말고 그냥 하는 것이다. 중간의 지옥을 빠져나오는 유일한 방법은, 그냥 하는 것이다.

삶은 늘 선택의 연속이다. 어떤 일이 내게 어울리는 것일까, 이게 나의 길인가, 내가 올바른 선택을 했는가 고민하게 된다. 어떤 일이든 중간의 지옥을 지나 보지 않으면, 그 일이 나에게 어울리는지조차 알 수 없다. 그 후 나오는 결과와 반응을 보고서야, 이 일이 내게 어울리는 것이었는지 비로소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어떤 일을 시작조차 하지 않으면, 중간의 지옥을 지나지 않으면 내 삶에 어울리는 방식을 찾아낼 수 없다. 그래서 나는 모든 일에서, 슬슬 중간 지점에 다다랐다고 느끼면 곧 이 일의 정체를 알 수 있을 것이라는 예감에 사로잡힌다. 이 일이 내 삶과 어떻게 연결되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통과해야만 한다고 믿게 되는 것이다.

 

 

원문: 문화평론가 정지우의 페이스북


불교에서는 운명이나 숙명 대신에
스스로의 삶을 내 스스로 결정지을 수 있다는 인과(因果), 업보(業報)론에 기초하고 있다.
누구나 물론 전생의 업인(業因)에 따라 자기만의 삶의 모습을 갖고 태어난다. 어느 정도의 부를 축적하고 살 것인지,
어느 정도의 학벌과 능력과 외모를 가지고 살아갈 것인지,
어디에서 어떤 일을 하며 얼마 정도의 행복을 누리다가
언제쯤 죽게 될 것인지에 대해
누구나 태어나면서부터 어느 정도 정해진 업력(業力)을 받고 태어난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어떤 배우자를 만날 것인지,
어느 정도의 대학이나 학벌을 가지게 될 것인지,
어떤 회사에 취직하여 어느 정도까지 진급을 하게 될 것인지,
어떤 인연을 만나서 그들에게 어떤 도움을 받게 될 것인지,
언제 어떤 병이나 사고로 얼마만큼 고통을 겪게 될 것인지,
돈과 재산은 어느 정도를 벌어 쓸 수 있을 것인지,
그렇게 살다가 언제쯤 몇 살 쯤 죽어갈 것인지,
그런 것들에 대한 삶의 윤곽이 전생의 업식(業識)에 의해
어느 정도 결정되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내 전생의 업을 그대로 받을 것이니
이번 생은 내가 아무리 발버둥치더라도
절대 그 업을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그것도 인생 일대의 가장 큰 실수를 저지르게 되는 것이다.

업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우리가 말로 행동으로 생각으로 행하는 행위이다.
전생, 또 오랜 전생을 이어오며 지어왔던 온갖 행위들이
지금 내 안에서 기본적으로 이번 생을 어떻게 펼쳐나가게 될지에 대해
결정짓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결정의 원인은 내 과거의 행위에 있다.
내 과거의 온갖 행위들에 의해 내 현실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결론은 무엇인가.
결론은 내 현재의 행위에 따라 또 다시 내 미래가 바뀔 수밖에 없다는
지극히 당연한 결론이다.

자신의 행위에 따라, 자신의 마음에 따라,
자신의 욕심과 집착의 크기에 따라,
자신의 마음공부와 수행과 기도의 정도에 따라,
내 삶은 언제든지 180도 확연히 달라질 수 있다.

달라질 수 있는 정도가 아니라
끊임없이 우리 삶은 그 궤도를 수정해 나가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내일 있을, 내년에 있을 내 삶의 궤도가
내 행위에 따라 끊임없이 수정되어지고 있다.

그것을 운명이나 숙명이라고 이름 짓지 않고
업(業)이라고 이름한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운명이나 숙명은 바꿀 수 없는 것인데 반해
업이라는 것은 언제고 바꿀 수 있으며,
바꿀 수 있는 정도가 아니라 순간순간 변화하는 특성을 가지기 때문이다. 오늘 힘겹게 살아가는 소년 소녀 가장을 만나
따뜻한 마음을 나누어 주고, 필요한 것들을 나누어 주었다면
바로 그 한 번의 행위가
1년 뒤 파산할 지 모르는 업연을 2년 뒤로 늦춰줄 수도 있다. 이웃들에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고,
힘겹게 살아가는 이웃과 벗을 찾아가 위로해 주고,
지혜로운 삶의 길을 안내 해 주었다면,
이번 생에는 있지도 않았을 선지식 스승과의 인연이 생겨날 수도 있다. 오늘 부처님께 나아가 기도하고 마음을 비우며
그동안 가지고 있던 욕심과 집착을 말끔히 비워냈다면
다음 달에 닥칠지 모를 급성 위장염이나 위암 판정이
10년 쯤 뒤로 늦춰지게 될 수도 있다. 오래도록 마음속에 응어리 져 있던
미워하는 원수에 대한 불같은 화를 다스리고,
마음 깊은 곳에서 용서를 해 주었다면
몇 달 뒤에 닥칠지 모를 홧병이 소멸될 수도 있다.

필요하다고 그 때 그 때 사 들이고,
여유가 있다고 아끼지 않고, 절약하지 않았던 삶의 습관이
10년 뒤에 올 퇴직을 1년 뒤로 앞당길 수도 있고,
나보다 못난 사람, 가난한 사람을 업신여기는 한 마디의 말이
지금의 내 높은 지위를 1년 빨리 끌어내릴 수도 있다. 어디 그 뿐인가.
파리나 모기, 풀벌레와 작은 곤충들의 생명을
별 생각 없이 죽이거나 괴롭혔다면
그것은 내 명(命)을 몇 년씩 앞당기는 일이 될 수도 있고,
산을 함부로 깎고, 나무를 함부로 베는 행위로 인해
자연재해가 일어났을 때, 폭풍우가 내가 사는 지역을 강타했을 때
바로 내가 사는 집이 무너지고, 내 터전이 깎여나갈 수도 있다. 지금 이 순간 나는 어떤 행위를 하고 있는가.
지금 이 순간 내가 하는 행위에 따라
운명이라고 생각했던 나의 업은 엄청난 변화를 겪는다. 불교의 제행무상이라는 이치에 따르면
그 어떤 것도 정해진 것은 없다.
업이라는 것 또한 끊임없이 변하는 것이다.
우리의 행위가 매일 매일 달라지고 지속된다는 것은
받아야 할 업의 과보 또한 끊임없이 달라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신구의 삼업,
신구의 삼업을 돌이켜 보라.
매일 매일 몸으로, 입으로, 생각으로
어떤 행위를 해 왔는가를 놓치지 말고 살피라.

삼업에 대한 일기를 쓰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삼업 일기장’은 크게 세 단락으로 나뉠 것이다.
첫 번째 단락은 몸의 행위를, 두 번째는 입으로 쏟아낸 말의 행위를
세 번째는 마음에서 일으킨 온갖 생각의 행위들을 적는 것이다.

몇 일, 몇 주, 몇 달 동안 삼업의 일기장을 쓰다 보면
업의 일정한 패턴을 살피 수 있을 것이다.
주로 어떤 악업을 많이 짓고 있는지,
어떤 선업들을 많이 행하고 있는지,
복은 얼마나 짓고 있는지, 죄는 얼마나 짓고 있는지,
탐욕에 따른 행위가 많은지, 성냄에 따른 행위가 많은지,
다양한 업의 패턴을 살펴보면
이제부터 내 삶이 어떻게 펼쳐질지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질 것이다. 물론 전생부터 이어 온 내가 모르는 업들은 제쳐두더라도
삶에 대한 획기적이며 경이로운 성찰이 찾아 올 것이다.

업의 내용은 일반적으로 선한 것들의 종류와 악한 것들의 종류가 있다.

말로써 하는 구업을 지을 때도
칭찬을 하거나, 조언을 해 주거나, 진리를 설해 주거나,
따뜻한 격려를 해 주는 등의 선을 베푸는 행위가 있을 수 있고,
비난을 하거나, 욕설을 하거나, 이간질을 하거나, 꾸며낸 말을 하는 등의
악을 행할 수도 있다.

마음으로써 하는 의업 또한
마음 속으로 미워하거나, 성내거나, 욕심내거나,
어리석은 생각을 하는 등의 악한 것들이 있고,
사랑하고 자비로운 마음을 내며,
소박, 정직, 지혜, 나눔 등의 아름답고 선한 것들도 있다. 일반적으로 우리들이 행하는 거의 모든 행위는
선하거나 악한 쪽으로 향한다.
선한 쪽으로 우리의 업을 펼쳐내는 것,
바로 거기에 우리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열쇠가 담겨 있다. 업을 변화시키는 첫 번째 가장 큰 행위가 바로
보시 행이다.

선을 행하는 것,
내 것을 나누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 삶을 아름답게 가꾸어 가는,
업을 뛰어넘는 최고 단계의 실천 수행이다.

월급에서 일정부분을 떼어 내
불우한 이웃을 돕기 위해 사용하는 것,
또한 진리와 지혜를 많은 이들에게 전해 주기 위해 전법하는 것,
필요가 아닌 욕망으로 많은 물건을 사들이기 보다는
꼭 필요한 것들만 소박하게 구입하여 쓰는 것, 내 것이 아니라고, 소모품이라고, 돈이 넉넉하다고 낭비하기보다는
물 한 방울이라도 아껴쓰고 근검 절약하는 것,
힘들고 어려운 이웃에게 힘이 되어 주는 것,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두려움을 주지 않아
나를 만나는 모든 이들이 평안을 느끼도록 하는 것, 이러한 작지만 분명한 한 가지 보시의 행이
내 앞에 펼쳐질 앞으로의 삶을 하나 하나씩 바꾸어 간다.
이러한 이타적인 업의 행위야말로
내 삶을 바꾸고, 내 미래를 바꾸는 결정적인 요소다. 두 번째로 운명을 뛰어넘는 요소가 바로 수행이다.
마음에 욕망과 집착을 비우고,
번뇌와 아상을 놓고 비우는 삶,
그것이야말로 업을 뛰어넘는 비결이다.

내가 잘났다는 생각, 내가 옳다는 아집을 놓아버리는 것,
내 소유와 내 물건이라는 소유욕을 놓아버리는 것,
모든 판단과 분별을 쉬는 것,
시비 분별을 끊고 올라오는 모든 생각들을 묵묵히 지켜보는 것,

좌복을 깔고 앉아 좌선에 드는 것,
경전을 공부하고, 독경하며, 지혜의 말씀을 사유하는 것,
매일 아침이나 저녁으로 108배 절 수행을 하는 것,
부처님이나 보살님의 명호를 염불하거나 다라니, 진언을 독송하는 것,

이러한 작지만 분명한 지혜를 닦는 비움의 수행이
내 앞에 펼쳐질 앞으로의 삶을 하나 하나씩 바꾸어 간다.
이러한 자리적인 청정한 수행이야말로
내 삶을 바꾸고, 내 미래를 바꾸는 결정적인 요소다.

이치가 이러할진대
점을 보고, 사주팔자를 보며, 운명과 관상을 본다는 것이야말로
얼마나 어리석은가. 사주팔자를 보며, 운명을 점치는 것은
이미 주어진 업을 더욱 강화시켜
더 이상 내 스스로 업을 변화 발전시킴으로써
업의 뛰어넘을 수 있는 본연의 무한한 능력을 축소시키고 만다. 사주를 점쳐 볼 바로 그 시간에 차라리
‘일체 모든 이들이 고통에서 소멸되고 평안하소서 안락하소서 행복하소서’
라는 자비의 게송을 읊는 것이 더욱 내 운명을 바꿀 수 있는
더욱 지혜로운 방법이다. 운명을 거부하는 것은 모든 고의 시작이며,
운명에 순응하는 것은 평범한 수준이지만,
운명을 스스로 바꾸고 개척해 나가는 것이야말로
지혜로운 수행자가 가야 할 당당한 삶의 길이다.

어제와 오늘, 조금 전과 바로 지금의
나의 선한 행동, 나눔의 행동, 사랑의 행위, 깨어있는 행위가
내일 있을 괴로움을 몰아내고,
다음 주에 있을 병고를 없애주며,
다음 달에 있을 퇴직을 막아주고,
내년에 있을 이혼을 없애주며,
몇 년 뒤에 있을 단명의 업을 소멸시켜 줄 수 있다.

반대로 오늘 내가 행한 악행이
내일 있을 괴로움을 다음 순간으로 앞당기고,
다음 주에 있을 병고를 내일로 앞당기며,
다음 달에 있을 퇴직을 다음 주로 앞당기고,
내년에 있을 이혼을 다음 달로 앞당기고,
몇 년 뒤에 있을 단명의 업을 내년으로 앞당길 수 있다.

미래가 불안한가,
노후가 불안한가,
그 모든 불안을 해소시킬 유일한 탈출구는
바로 지금이며,
그 불안을 소멸시키는 약이 바로
사랑이 담긴 선행이며, 자비로운 나눔과 보시에 있다. 나눔과 비움, 보시와 수행, 복과 지혜,
이 두 가지의 실천이야말로
모든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이며,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분명한 삶의 길을 보여주는
유일한 진리의 나침반이 될 것이다.

혹 나는 공부에는 재능이 없다거나,
부유함은 나와는 다른 세상 이야기라고 체념한다거나
내 운명은 어차피 진흙탕 속이라고 좌절하거나,
내 주제에 어떻게 행복할 수 있을까 라고 주저하거나,
나 같은 악행을 많이 한 사람이 어떻게 복을 받을 수 있을까라고 염려하거나,
내 삶은 포기와 좌절과 절망 뿐이라고
주어진 운명을 비관하지는 않았는가. 아직 비관할 때가 아니다.
절망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아니 그런 운명도, 그런 때도 없다.
이 세상에 정해진 운명이란 어디에도 없다. 언제든 마음을 돌이켜 ‘지금 여기’에서 시작한다면
수북이 쌓인 마른 풀이 성냥불 하나에 불타 없어지듯이,
수백 년 동안 어두웠던 동굴이 불빛 하나에 환히 밝아지듯이
어제의 모든 죄업은 일시에 소멸될 수도 있다. 내 삶은 내 스스로 만들어 갈 수 있다.
내 운명은 내 스스로 개척한다.
업이라는 것은 정해진 것이 아니기에
내 스스로 그 업을 뛰어넘을 수 있는 것이다. 매 순간순간 업을 뛰어넘을 수 있는,
업을 경이롭게 바꾸어 나갈 수 있는
지혜와 복덕이 담긴 행위를 해 나가고 있는가.
마음을 비우고, 소유를 나누는 비움과 나눔의 행위를 해 나가고 있는가.

작은 비움 하나가,
작은 나눔 하나가,
내 삶의 변화시키고 진화시킬 수 있다. 작은 비움,
미워했던 사람을 용서해 주는 것,
싫어하던 내 외모를 받아들이는 것,
기분 나쁘던 사람을 이해해 주는 것,
욕심 내던 것을 하나씩 포기해 가는 것,
집착하던 사람을 놓아주는 것,
혹은 어떤 대상에 대한 집착을 놓아버리는 것,
아껴쓰고 절약하는 것,
소박하고 청빈하게 사는 것,
꼭 필요하지 않으면 사지 않는 것,
내가 옳다고 생각했던 견해를 놓아버리는 것,
편견과 선입견을 비우는 것,
옳다 그르다는 생각들을 묵묵히 관하는 것,
매일 아침 절 수행을 하는 것,
염불, 독경, 진언, 좌선 수행을 하는 것,
때때로 주말에 가족이 함께 주말 템플스테이에 참여하는 것,
큰스님의 법문을 듣는 것,
불경이나 불서를 가까이 하는 것,
마음을 관하는 것,
이러한 작은 비움들이
내 운명을 변화시키고 내 업을 바꾼다.

작은 나눔,
이웃을 보고 안부를 나누고 인사를 나누는 것,
지나치던 어린 아이에게 미소를 보내는 것,
직장의 청소부 아주머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는 것,
버스 기사 아저씨께, 톨게이트의 매표원 아주머님께 캔커피 하나를 드리는 것,
아내가 차려 준 밥상과 반찬에 칭찬세례를 퍼 붓는 것,
아들의 좋지 않은 성적에 웃으며 격려해 주는 것,
친구의 고민을 내 일처럼 들어주는 것,
나를 만나는 사람에게 나로 인한 불편함이 없게 해 주는 것,
남들보다 더 많이 일하고 더 많이 봉사하는 것,
내 집과 이웃 집 앞의 쓰레기를 청소하는 것,
주말에 가족이 함께 고아원을 방문하는 것,
TV에 나오는 불우이웃을 위한 ARS에 때마다 전화하는 것,
매월 일정액의 보시를 행하는 것,
경전이나 지혜의 책들을 보시하는 것,
부처님 말씀을 이웃에게 전하는 것,
이 세상을 향해 ‘고통이 소멸되고 평안하소서 안락하소서 행복하소서’라고 축원하는 것,
이러한 작은 나눔들이
내 운명을 변화시키고 내 업을 바꾼다. 이러한 나눔과 비움의 실천이
언젠가 있을 내 인생의 온갖 재앙들을 물리치고,

언젠가 있을 내 인생의 온갖 행복들을 더욱 더 몰고 온다.


-법상스님의 글 중에서

그리스 신화에서 저승까지 찾아가 아내 에우뤼디케를 구해내는데 성공한 오르페우스에겐 반드시 지켜야 할 금기가 주어집니다.

그건 저승을 다 빠져나갈 때까지, 절대로 뒤를 돌아봐서는 안된다는 조건이지요.

그러나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 속 설명에 따르면
“그녀를 보고싶은 마음에, 그녀가 포기했을까 두려움에 사로잡혀” 그는 그만 뒤를 돌아보고 맙니다.
이로 인해 아내를 데려오는 일은 결국 마지막 순간에 수포로 돌아가고 말지요.

구약 성서에서 롯의 아내도 그랬습니다.
죄악의 도시 소돔과 고모라가 불로 심판받을 때
이를 간신히 피해 떠나가다가 신의 명령을 어기고 뒤를 돌아보는 바람에 소금 기둥이 되고 말았으니까요.

금기를 깨고 뒤돌아보았다가 돌이나 소금 기둥이 되는 이야기는 전세계 도처에 널려 있지요.
우리의 경우도 탐욕스런 부자의 집이 물로 심판을 받을 때
뒤돌아본 그의 며느리가 바위가 되고 마는 충남 연기의 장자못 전설을 비롯해 조금씩 변형된 형태로 여러 지방에 전해져 내려오니까요.

국내 개봉된 일본 영화 중 최고 흥행 성적을 기록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치히로 역시 비슷한 상황에 놓입니다.
기상천외한 일들이 벌어지는 신들의 나라에서 돼지가 된 부모를 구출해 돌아가던 소녀 치히로는
결코 돌아봐서는 안된다는 말을 듣는 거지요.

그런데 왜 허다한 이야기들에 이런 ‘돌아보지 말 것’에 대한 금기가 원형(原型)처럼 반복되는 걸까요.
그건 혹시 삶에서 지난(至難)했던 한 단계의 마무리는
결국 그 단계를 되짚어 생각하지 않을 때 비로소 완결된다는 것을, 사람들이 경험을 통해 체득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오르페우스처럼, 그리움 때문이든 두려움 때문이든, 지나온 단계를 되돌아볼 때 그 단계의 찌꺼기는 도돌이표처럼 지루하게 반복될 수 밖에 없는 게 아니겠습니까.
소금 기둥과 며느리 바위는 그 찌꺼기들이 퇴적해 남긴 과거의 퇴층(堆層) 같은 게 아닐까요.

류시화 시인은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라는 시에서 이렇게 적었습니다.

시를 쓴다는 것이
더구나 나를 뒤돌아본다는 것이
싫었다, 언제나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나였다
다시는 세월에 대해 말하지 말자

정해종 시인도 ‘엑스트라’에서 이렇게 되뇌었지요.

그냥 지나가야 한다
말 걸지 말고
뒤돌아보지 말고
모든 필연을
우연으로 가장해야 한다

테오 앙겔로풀로스의 영화 '율리시즈의 시선'에서는 또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그리스 최초의 영화를 찾아서 발칸 반도를 헤매는 영화감독 A의 길 안내를 맡은 택시 운전사 외르트비즈가 국경선에 도달하자 이렇게 당부하는 거지요.
"절대 눈길을 밟고 가지 마십시오. 그래서 흔적을 남기지 마십시오"
A처럼 점점 과거 속으로 침몰해가는 사람에게 유일한 금기는 바로 그와 같은 것이었지요.

그런데 이때 의미심장한 것은 치히로가 그 힘든 모험을 마치고 빠져나오는 통로가 다리가 아닌 터널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두 개의 공간을 연결하는 통로엔 다리와 터널이 있겠지요.

다리는 텅 빈 공간에 ‘놓는’ 것이라면, 터널은 (이미 흙이나 암반으로) 꽉 차 있는 공간을 ‘뚫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리가 ‘더하기의 통로’라면 터널은 ‘빼기의 통로’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결국 삶의 단계들을 지날 때 중요한 것은 얻어낸 것들을 어떻게 한껏 지고 나가느냐가 아니라, 삭제해야 할 것들을 어떻게 훌훌 털어내느냐,일는지도 모릅니다.
이제 막 어른이 되기 시작하는 초입을 터널로 지나면서 치히로는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들을 몸으로 익히면서 욕망과 집착을 덜어내는 법을 조금 배웠겠지요.

박홍식 감독의 영화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에서 사랑이 잘 풀리지 않을 무렵 원주는 봉수를 등지고 계단을 오르면서 ‘뒤돌아보지 마라. 뒤돌아보면 돌이 된다’고 되뇌지만 결국 뒤를 돌아 보지요.
그러나 그렇게 해서 쓸쓸히 확인한 것은 봉수의 부재(不在) 뿐이었습니다.

아무리 마음이 아파도 뒤돌아보지 마세요.
정말로 뒤돌아보고 싶다면 터널을 완전히 벗어난 뒤에야 돌아서서 보세요.
치히로가 마침내 부모와 함께 새로운 삶의 단계로 발을 디딜 수 있었던 것은 터널을 통과한 뒤에야 무표정한 얼굴로 그렇게 뒤돌아본 이후가 아니었던가요.


- 이동진 기자의 디렉터스 컷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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