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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의미에 대한 회의감을 어떻게 다루나요

이제 막 20살이된 예비 새내기고, 전 어렸을때부터 존재라는주제에 대한 의문이 많았습니다.초등학교 1, 2학년즈음엔 이별이랑 죽음을 무서워해서 밤마다 부모님을 붙잡고 죽지말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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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미를 아는 일은 중요합니다. 그리고 작성자님의 생각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거칠게 말하면 인간이란 찰나 있는 유기물 덩어리이며, 삶은 기회조차 아니죠.
선택할 수 없는 탄생을 맞이한 우리는 진화로 형성된 알고리즘에 따라 움직입니다.

그 길은, 우리가 의식하기 전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죠. 지능, 성격, 겉모습, 환경과 상호작용하는 발달......
교통사고라도 크게 나면 아등바등 이어 온 시간과 생명에 부여된 무거운 가치가 우습게 모든 것은 끝납니다.

아랍 문명이 남긴 거대 석상은 소량 폭약에 형체 없이 사라지고, 수백 년 이어져 온 성당은 불타 무너져 내립니다.
오세아니아 대륙이 잉태한 생명의 신비함이, 불 속에서 숲과 함께 우리가 모르는 새 사라지고 있습니다.
사랑은 번식욕에 이끌린 착각이고, 도덕은 필요에 의해 도입된 것이며 아무리 수학이 발달해도 어떤 공리는 증명할 수 없지요.

의미의 껍질을 아주 벗겨내면 남는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건 불가능하죠. 아무리 파헤쳐도 닿는 데가 있습니다.

예컨대, 저는 사랑이 생긴 진화의 과정을 알면서도 사랑할 수 있습니다.
미각과 포만감이 그저 살아가기 위한 자극이라도, 야심한 새벽 나가 먹은 국밥에 뜨끈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세로토닌과 도파민의 분비가 행복감을 일으킨다는 사실이 행복감이 그 자리에 있다는 사실을 바꾸지는 못합니다.

이렇게, 존재가 가진 한계는, 실존을 바라볼 때 잊을 수 있습니다.

실존은 순간에 있습니다. 무의미 속에서 순간은 이어집니다.
순간에 어떤 의미를 쌓느냐, 그것이 실존하는 사람의 특권입니다.

어떤 식으로든 작성자님은 세상을 해석하고 있으며, 무의미마저 하나의 의미로 쓰인다는 점을 스스로도 아실 겁니다.

즉 작성자님이 모든 의미를 지워낸 그 자리에 남아 있다고 생각하는 것조차 이미 직접 지은 의미입니다.

그러니 선택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꾸며진 의미라면 어떤 신기루를 어떻게 좇을 것인지.
be가 가짜라면 적어도 어떻게 ing할 것인지.

도무지 멈출 수 없는 삶의 달리기는, 목표에 다가가는 것이 아닙니다.
목표란, 달리게 하는 원동력일 수 있어도, 결국 잘 달리기 위한 마인드세팅에 불과하죠.

그러니 차라리 춤 같은 것입니다.
우리는 ing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으니까요.

산타클로스가 가짜라는 사실을 깨달은 뒤에도 유년의 크리스마스는 참 두근댔습니다.
앞으로도, 산타의 상징에 설령 아무 실체 없더라도 모든 이의 크리스마스는 풍요롭겠죠.

물리학에 뜻이 있었다 하셨죠.
만약 다시 물리학을 공부하게 된다면, 중요한 것은 어떤 원리나 배움 자체가 아닙니다.

원리로 나아가는 과정, 그 지향 속에, 마땅히 찾고자 하는 세계가 열릴 것입니다.

신기루에 닿을 수 없을지라도 신기루를 사랑하는 길은 작성자님의 삶에 있기 바라며,
두 줄 요약 들어갑니다.

1. 그런 것(X as it)은 없다.
2. 그러는 것(X being it)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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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드리야르에 따르면 소비라는 것은 주체인 '나'가 객체인 '물건'을 필요에 의해 사는 행위가 아니다. 오히려 소비 자체를 통해 무언가를 표시하고 표현하는 행위이다. 가령 명품백 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많은 사람들이 명품백을 소비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 가방에 꼭 담아야 할 물건이 있어서가 아니다. 그냥 명품백을 어깨에 걸친다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 는 것이다. 명품백을 갖고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자신의 경제적.사회적 지위에 대한 어떤 표현 행위이자 확인이다. 소비는 더 이상 일차적인 필요 목적을 충족시키려는 행위가 아 니라 문화적 만족 혹은 과시를 하기 위한 표현 행위이다. 즉 물질적 만족이 아니라 기호적•문화적 만족을 추구하기 위한 행위가 오늘날 현대 사회의 소비인 것이다.

 


현대사회는 소비 자체를 통해 무언가를 표시하고 표현하는 행위-기호 의 사회인 소비사회다. 소비는 기호를 체계적으로 조종하는 활동이다. 즉 소비는 인간의 자신을 표현하는 형식이자 기호이다. 소비의 기호적 표현을 통해서 사물은 하나의 질서를 이루게 된다. 따라서 소비는 코드화된 체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보드리야르는 다음과 같이 3가지의 차원에서 소비사회를 기호학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 객관적 차원 : 소비사회에서 상품들이 배열과 분위기의 구조를 갖고 있다. 전통사회에서는 소비상품과 사물은 인간과 친밀한 현존적 관계를 유지하였지만 현대에 와서는 모든 상품 이 기호로 변하면서 기호적 요소로 간주되고 요소들의 결합이 주는 분위기가 중요해진다.
이런 의미에서 소비사회란 상품이 기표가 되어 떠도는 그런 사회이다.

- 주관적 차원 : 기계장치, 고안, 골동품 수집등과 같은 것에 나타나는 인간들의 주관적인 우 열의 사고구조다. 즉 의미작용의 질서이자 사회적 차이화의 과정이다.
- 이데올로기적 차원 : 상품들이 신용과 광고 효과를 얻는 방식을 말한다.

 

 

 

자신의 정체성을 브랜드에 의탁하게 되고,
소비로 정체성을 구축하는 발상 자체가 천민자본주의 산물이고 그냥 소비 기계로써 전락하는 것..

요즘 계속 생각해보게 되는 기호소비라는 개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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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하필 지긋지긋한 날들 중에 찾아온다. 사랑을 믿는 자들, 합성섬유가 그 어떤 가죽보다 인간적이란 걸 모르는 자들. 방을 바꾸면 고뇌도 바뀔 줄 알지만 택도 없는 소리 다. 천국은 없다.

사랑이 한때의 재능이었다는 걸 깨닫는 순간은 인간에게 아주 빨리 온다. 신념은 식고 탑은 무너진다. 무너지는 건 언제나 상상력을 넘어선다. 먼지 휘날리는 종말의 날은 생 각보다 아주 짧다. 다행히 지칠 시간은 없다.

탑의 기억이 사라질 즈음
세상엔 새로운 날이 올 것이다.
지긋지긋한 어떤 날이.

- 허연, 천국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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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하찮은 일이라도 매일매일 계속 하고 있으면, 거기에 뭔가 관조와 같은 것이 우러난다는 말이라고 생각된다.


나 자신만의 침묵의 시간을 확보한다는 것은, 나의 정신 위생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 작업이었다.




계속 달려야 할 이유는 아주 조금밖에 없지만 달리는 것을 그만둘 이유라면 대형 트럭 가득히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가능한 것은 그 '아주 적은 이유'를 하나하나 소중하게 단련하는 일 뿐이다. 시간이 날 때마다 부지런히 빈틈없이 단련하는 것.






인생에는 아무래도 우선순위라는 것이 필요하다. 시간과 에너지를 어떻게 배분해가야 할 것인가 하는 순번을 매기는 것이다. 어느 나이까지 그와 같은 시스템을 자기 안에 확실하게 확립해 놓지 않으면 인생은 초점을 잃고 뒤죽박죽되어 버린다.





계속하는 것- 리듬을 단절하지 않는 것. 장기적인 작업을 하는 데에는 그것이 중요하다. 일단 리듬이 설정되어지기만 하면, 그 뒤는 어떻게든 풀려 나간다.






진정으로 가치가 있는 것은 때때로 효율이 나쁜 행위를 통해서만이 획득할 수 있는 것이다. 비록 공허한 행위가 있었다고 해도, 그것은 결코 어리석은 행위는 아닐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실감으로써, 그리고 경험칙으로써






나는 쓰면서 사물을 생각한다. 생각한 것을 문장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고, 문장을 지어 나가면서 사물을 생각한다. 쓴다고 하는 작업을 통해서 사고를 형성해간다. 다시 고쳐 씀으로써 사색을 깊게 해나간다.





"Pain is inevitable. Suffering is optional."
아픔은 피할 수 없지만 고통은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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