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병로 서울대학교 컴퓨터공학부 교수

 

창의성에 대한 관심이 큰 시대다. 성실한 인재보다 창의적 인재를 더 원한다. 이런 창의성에 대한 관심의 크기에 비해 정작 창의성의 본질에 관한 이해는 일천하다. 잘못된 창의적 느낌을 주는 것들이 있다. 튀는 옷과 헤어스타일, 불규칙적인 생활, 개인주의, 거침없는 자기주장, 대학 중퇴나 정규교육 부재… 창의성을 이런 외형적인 특성들과 연관시키는 기사나 포스팅을 본다. 이런 것들은 일부 창의적인 사람들이 드러낸 겉모습의 일부일 뿐, 역방향으로 이런 모습을 가진 사람들이 더 창의적인 것은 아니다.

 

 

창의적 산출물은 하위의 지적 빌딩 블록들을 결합하고 거기에 어떤 새로움이 가미될 때 만들어진다. 산출물의 레벨은 자신이 가진 하위 빌딩 블록들 중 가장 레벨이 높은 것보다 한 단계 더 높아질 수 있을 뿐이다. 그러니 좋은 품질의 빌딩 블록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초등학교 수준의 빌딩 블록을 가진 사람이 발휘하는 창의력이란 초등학교 레벨의 산출물에 국한된다. 창조성은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 자기가 가진 기초에 연동되어 만들어지는 것이다. 조지 바살라는 그의 책 『기술의 진화』에서 새로운 기술이 출현하는 3가지 조건을 들었다. 하부기술들의 다양성, 이들로부터의 선택, 새로움의 가미. 이것은 진화의 핵심 프로세스이기도 하다.

 

 

자기주장도 변변히 하지 못하고, 한번 시작한 일을 싫증 내지 않고 묵묵히 수행하는 사람은 구식 스타일의 인재쯤으로 여긴다. 이런 성향을 가진 직원이나 학생들 중에 충분한 시간이 지나고 나면 갑자기 화려하게 창의성의 꽃을 피우는 경우가 많다. 고급의 산출물을 내기 위해서는 고통스러운 기초 확립의 과정을 필요로 한다.

어떤 대나무는 땅속에서 5년을 준비한 다음 지상으로 머리를 내밀면 하루에 최대 60cm까지 자란다. 이런 면에서 중·고등 교육의 어려움이 있다. 학생이 충분한 기초를 쌓도록 하는 것과 ‘편하게’ ‘행복하게’ 하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것은 양립하기 힘든 면이 있다. 우리 고등학교 수학이 한 예다. 후자의 가치에 집중하여 지속적으로 커리큘럼을 축소해왔다. 결과적으로 AI 시대를 준비하는 가장 중요한 수학적 도구인 벡터와 행렬이 통째로 빠져버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일본에서는 유도리 교육이란 이름으로 이런 철학의 교육을 시도하다가 포기한 바 있다.

 

 

강제적인 프로세스가 없이도 상당한 레벨에 이를 수 있는 학생은 희소하다. 극소수의 특출한 학생들만이 스스로 지적 호기심을 따라 충분한 수준의 기초를 구축할 수 있다. 빌 게이츠나 스티브 잡스가 이런 류의 천재들이다. 그렇지만 그들도 미국이라는 시장에 있었기 때문에 꽃을 피울 수 있었다. 우리는 그런 환경이 아니다. 구성원들이 가능하면 풍부한 지적 빌딩 블록들을 갖도록 하는 확률적 접근법이 현실적이다.

 

 

흔히 토론의 과정에서 창의적 아이디어가 나오기도 하는데 토론도 그냥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기초가 있어야 말이 통하고 빌딩 블록을 주고받고 다른 이의 빌딩 블록 위에 자신의 것을 구축할 수 있다. 사고의 추상화 레벨이 두 단계 이상 차이 나면 대화가 잘 되지 않는다. 호기심도 필수지만 이것도 기초가 있어야 적절한 궁금함을 도출할 수 있다. 결국 이 모든 것이 권태를 참아내면서 고통스러운 기초 확립의 시간을 견디는 성실함과 집요함을 필요로 한다. 많은 창의적인 인재가 이런 지루하고 창의적이지 않은 듯한 과정을 견딘 결과로 만들어진다.

 

 

 

- 문병로, 서울대학교 컴퓨터공학부 교수

 

 

https://www.joongang.co.kr/article/23659580#home

요즘 저는 집구석에서 하릴없이 섀도 복싱을 하면서 이 소리는 입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라며 신이 주신 금쪽같은 시간을 레프트 스트레이트로 날려버리는가 하면, 막 배우기 시작한 기타를 반주 삼아 ‘오빠 생각’을 부르면서 이 노래 소리는 도무지 내 입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라며 인간이라면 낼 수 없는 파열음으로 또 한 번 그 신성한 시간을 두 동강 내버리고 있습니다. 게다가 어제 아버지가 명예퇴직을 하셨다는 사실도 잊은 채, 집에 아무도 없는 줄 알고 헬로비너스의 노래를 목청껏 부르다 들켜, 나도 울고 아버지도 울고 아버지가 PC방이나 가라며 쥐여주신 만원짜리도 울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topclass〉에서 글을 한번 써보라며 지면을 내줬습니다.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을 위한 인터뷰 전문 잡지 〈topclass〉에서 저한테 이 지면을 맡긴 건 ‘그래, 이런 사람도 사는데 당신들도 살아’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서인 것 같아 받았습니다. 아차, 저는 박정민입니다.

2011년 〈파수꾼〉이라는 독립영화로 데뷔해, 얼마 전 개봉한 〈전설의 주먹〉이라는, 웬만한 사람은 다 아는 강우석 감독님의 영화에서 웬만한 사람은 다 아는 황정민 형님의 아역을 연기했습니다. 어린 시절 엄마와 같이 낄낄대며 보던 〈투캅스〉, 친구들과 보고 나오면서 서로가 서로를 ‘개똥파리 같은 새끼’라고 부르게 만든 〈공공의 적〉, 비겁한 변명의 최후를 가르쳐준 〈실미도〉까지. 이외에도 세상에 수많은 작품을 내놓으신 강우석 감독님 앞에서 연기를 한다는 건 신인 배우로서는 매우 놀랍고 경이로운 경험입니다. 덕분에 이렇게 지면도 받아냈으니 감독님 집에 보일러 하나 놔드려야겠어요.

연기를 해보겠다고 극단에 들어간 게 2005년 열아홉 살 때였습니다. 겉멋만 잔뜩 들어 당장 장혁 같은 유명 배우가 될 것 같았(던 한 청년은 바로 그 장혁이 제대하던 2006년 입대합니다)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극단 형과 함께 포스터를 붙이다가 궤변을 들었습니다.

“너 같은 놈 많이 봤어. 발 좀 담그는 척하다가 다 없어져.”

화가 나서 참을 수 없었지만 그 형이 싸움을 잘해서 참았습니다. 이후 배우가 되는 길이 너무 힘들어서 다 포기해버리고 싶은 순간마다 그 형의 말을 되새겼습니다. 누가 이기나 해보자는 마음이었죠. 그러고 보니 연기하겠다고 마음먹은 순간부터 잘한다, 최고다라는 말보다 어쩌면 그 말이 더 큰 거름이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그러니까 어서 주변 후배들에게 지금 당장, 네가 하는 일이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일 집어치우라고 말해주세요. 그럼 그 후배들은 당신을 증오하며 언젠간 당신을 밟고 일어설 겁니다).

그렇게 8년이 지나 어릴 적 그토록 열광하던 감독님들을 만나고, 무턱대고 좋아했던 배우들이 이름을 불러주는,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아직은 조무래기지만, 비실비실하던 촌놈에게 이런 일이 일어날 줄 누가 알았겠어요. 여담으로 충남 예산 출신인 우리 엄마는 <넝쿨당>을 볼 때마다 당신 친구가 유준상 사촌 형이라며 내 귀에 캔디가 박이도록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을 듣다 못한 제가 “엄마 내가 시사회 때 유준상 소개해줄게!”라고 했더니, 엄마는 “아이고 우리 아들 최고다. 뭐 입고 가야 되니?”라고 하셨습니다. 시사회 날 엄마는 예쁘게 차려입고 유준상 선배에게 다가가 단호하게 “내 친구가 그쪽 사촌 형이에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엄마는 ‘유준상’의 당황하는 표정을 보고 행복했을 겁니다.

음, 어쨌거나 저는 앞으로 30년 정도 더 이쪽에 ‘발 좀 담그는 척하려고’ 합니다. 그러다 보면 막판에 기적 같은 버저비터를 넣을지 누가 알겠습니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같은 일이 진짜로 일어날지도 모르잖아요, ‘기적’. 그리고 영화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 주인공의 말을 빌려, 어차피 “평생 동안 무언가를 필사적으로 해야 할 때가 그리 여러 번 오는 게 아니”라면 조금은 즐기면서 살아보려고 합니다. 저는 보통 사람보다 레프트 스트레이트를 잘 날리고, 보통 사람보다 헬로비너스 노래를 맛깔나게 부를 줄도 압니다. 또 어느 순간 필사적으로 살다 보면 엄마 친구가 레이디 가가의 작은 아버지가 될지 누가 알겠습니까. 분명 이 글을 보신 여러분에게도 기적 같은 일이 찾아올 겁니다. 매주 3000원이나 5000원을 투자해 내 손 안의 작은 행복, 6개의 아름다운 숫자를 지니고 다녀도 좋고, 언젠가는 소녀시대 중 한 명과 꼭 결혼할 거라는 자신만의 ‘자긍심’을 지니고 다녀도 좋습니다. 다만, 기회가 왔을 때 단칼에 베어버릴 수 있는 기적 같은 장미칼 하나 정도는 날카롭게 갈아놓으시길 바랍니다.

다 잘될 겁니다.

 

 

- 배우 박정민의 ‘언희(言喜)’, 2013년 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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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하필 지긋지긋한 날들 중에 찾아온다. 사랑을 믿는 자들, 합성섬유가 그 어떤 가죽보다 인간적이란 걸 모르는 자들. 방을 바꾸면 고뇌도 바뀔 줄 알지만 택도 없는 소리 다. 천국은 없다.

사랑이 한때의 재능이었다는 걸 깨닫는 순간은 인간에게 아주 빨리 온다. 신념은 식고 탑은 무너진다. 무너지는 건 언제나 상상력을 넘어선다. 먼지 휘날리는 종말의 날은 생 각보다 아주 짧다. 다행히 지칠 시간은 없다.

탑의 기억이 사라질 즈음
세상엔 새로운 날이 올 것이다.
지긋지긋한 어떤 날이.

- 허연, 천국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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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하찮은 일이라도 매일매일 계속 하고 있으면, 거기에 뭔가 관조와 같은 것이 우러난다는 말이라고 생각된다.


나 자신만의 침묵의 시간을 확보한다는 것은, 나의 정신 위생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 작업이었다.




계속 달려야 할 이유는 아주 조금밖에 없지만 달리는 것을 그만둘 이유라면 대형 트럭 가득히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가능한 것은 그 '아주 적은 이유'를 하나하나 소중하게 단련하는 일 뿐이다. 시간이 날 때마다 부지런히 빈틈없이 단련하는 것.






인생에는 아무래도 우선순위라는 것이 필요하다. 시간과 에너지를 어떻게 배분해가야 할 것인가 하는 순번을 매기는 것이다. 어느 나이까지 그와 같은 시스템을 자기 안에 확실하게 확립해 놓지 않으면 인생은 초점을 잃고 뒤죽박죽되어 버린다.





계속하는 것- 리듬을 단절하지 않는 것. 장기적인 작업을 하는 데에는 그것이 중요하다. 일단 리듬이 설정되어지기만 하면, 그 뒤는 어떻게든 풀려 나간다.






진정으로 가치가 있는 것은 때때로 효율이 나쁜 행위를 통해서만이 획득할 수 있는 것이다. 비록 공허한 행위가 있었다고 해도, 그것은 결코 어리석은 행위는 아닐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실감으로써, 그리고 경험칙으로써






나는 쓰면서 사물을 생각한다. 생각한 것을 문장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고, 문장을 지어 나가면서 사물을 생각한다. 쓴다고 하는 작업을 통해서 사고를 형성해간다. 다시 고쳐 씀으로써 사색을 깊게 해나간다.





"Pain is inevitable. Suffering is optional."
아픔은 피할 수 없지만 고통은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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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서경 작가(사진)는 글 쓰는 일을 자주 ‘건물’에 비유했다. 자신과 시나리오 속 인물이 만나는 곳을 아주 깊은 지하실 혹은 구불구불한 계단을 올라가야 도착할 수 있는 다락방이라고 말했다.

 
 기자명 김다은 기자 다른기사 보기  
  • 입력 2022.09.15 06:53
  • 782호
ⓒ시사IN 신선영

 

 

이 작품을 구상할 때 어떤 이미지에서 시작했나?

박찬욱 감독이 ‘남편을 두 번 죽인 여자에 대해서 써보자’고 제안했는데 자연스럽게 산이라는 배경이 떠올랐다. 이미지가 있었다. 가을 산, 그리고 높은 곳에서 떨어진, 사인이 불분명한 등산복 입은 남자(시체). 그를 죽인 여자에게 고소공포증이 있어서 울면서 산에 올라가는 것까지. 이 이미지들이 너무 좋았고, 산에서 시작했으니 그다음 사건은 바다에서 일어나는 하강구조로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대본 안에 자연적인 요소가 많이 반영됐는데, 자연에 대해서 쓰는 게 이렇게 기분 좋은 일인지는 몰랐다. 늘 머릿속에 산과 바다를 떠올렸다. 작업실 창 너머로도 남산이 보이는데, 작업실에 올 때마다 매일 산의 상태를 확인했다. ‘음 오늘은 스위스 산 같군’ 이런 식으로.

 

 

시나리오는 부산을 배경으로 하는 1부, 이포를 배경으로 한 2부로 나뉜다. 사건은 동일하다. ‘한 형사(해준)의 관할 지역에서 어떤 여자(서래)의 남편이 죽는 이야기’다.

1부와 2부는 거울이다. 이를테면 해준이 1부에서 썼던 애플워치를 2부에서는 서래가 쓴다. 해준이 애플워치를 쓰도록 설정한 이유는 자기 머릿속의 생각을 글로 절대 남길 수 없기 때문이다. 해준이 말하려는 속마음은 자기에게도 말하기 어려운, 결코 말할 수 없는 그런 마음이다. 그래서 녹음장치를 떠올린 거다. 그게 서래에겐 그렇게 다정할 수 없는 물건이었고. 그래서 2부에서는 서래가 그 물건을 이용해 해준을 기록한다.

그 외에도 1부에서는 해준의 파트너가 수완이었지만, 2부에서는 연수로 대체된다. 이야기를 거꾸로 뒤집으면 저절로 연결되는 장치들이 있는데, 이럴 땐 작가가 뭘 복잡하게 정해두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인물들이 사건들 안에서 알아서 움직인다. 나도 써지는 대로 놔둔다.

 

 

‘인물들이 알아서 움직인다’는 말은, 작가가 인물의 성격이나 행동 방식을 구체적으로 설정하지 않는다는 뜻인가?

나는 내 캐릭터가 어떤 사람들인지 모른다. 배우를 통해 인물이 살아 움직일 때까지 그 사람에 대해 나도 명확히 알 수 없다. 대신 몇 가지 사실들을 미리 정해둔다. 예를 들면, ‘서래는 사람을 죽일 수 있다’. 꼭 들어가야 하는 사실이다. ‘어쩌면 서래는 한국에서 첫 남편을 죽이기 전에 이미 다른 남편을 죽여본 적이 있을 수도 있다’ ‘자신의 외할아버지가 독립운동가라는 점을 자랑스러워한다’ 이런 것들을 모은다. 이게 모이면 경향성이 돼서 캐릭터가 만들어진다. 서래는 아마도 자긍심이 강한 인물일 것 같고, 자기보다 약한 존재에겐 친절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에겐 무뚝뚝할 것 같다.

해준의 경우는, ‘가족에게 도움이 되는 남자’라는 박찬욱 감독이 원하는 디테일이 있었다. ‘해준은 요리를 잘할 것이다’ ‘해준은 유용한 기술을 갖춘 사람일 것이다’ ‘주머니가 많은 옷을 입을 것이다’ 이런 사실들로 그가 어떤 인물일지 머릿속에 그려둔다.

 

 

〈헤어질 결심〉의 해준(왼쪽)은 “살인과 폭력이 있어야 행복한” 형사로, 서래는 살인 용의자로 나온다.ⓒCJ ENN
 
 

서래에 대한 연민과 애정이 커 보인다.

탕웨이 배우와 서래에 대해 종종 이야기했다. 연기를 한 배우에게도, 글을 쓴 작가에게도 어떻게 이렇게 서래는 감동적일 수 있을까. 그러다 이 장면을 찾아냈다. 서래가 신문실에서 자기 몸에 난 상처를 보여주며 “괜찮아요”라고 세 번 말하는 장면. 상처를 다가와서 봐도 괜찮고, 사진을 찍어도 괜찮고, 다른 사람이 그 모습을 봐도 괜찮다고 말하는 장면이다. 서래는 단 한 번도 괜찮지 않다고 말하지 않는다.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는 ‘거대한 수동성’을 가진 인물인데,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인물에게서 오는 감동이 있었다. 바로 그런 이유로 서래는 헤어질 결심을 할 수 없는 사람이기도 하다. 서래에게 헤어진다는 것은 자신이 죽거나, 타인을 죽여야만 가능한 행위다.

 

 

서래의 성격과 죽음의 방식이 닮았다.

서래는 바다 모래를 양동이로 파서 굴을 만들어 그 안에 들어간다. 그 죽음의 방식을 보고 많은 관객들이 ‘아, 저 사람은 내 마음속 어떤 감정이라도 가져갈 수 있겠구나’ 하고 느꼈던 것 같다. 서래는 마치 샤먼, 무당이나 대속하는 예수처럼 종교적인 인물이다. 그가 땅으로 들어갈 때 우리가 갖고 있던 그리움과 슬픔까지 다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묻히는 느낌을 준다. 그래서 관객들은 주인공이 ‘되어’ 슬퍼하는 게 아니라, 주인공이 안쓰러워서 눈물을 흘리게 된다. 이 영화가 불러일으키는 독특한 감정이다.

 

 

 

탕웨이 배우와 서래 사이에 공통점이 있나? 서래를 ‘정확하게’ 완성시켰다.

탕웨이 배우는 상자 같다. 안에 뭐가 들어가 있는지 모르는 상자. 모든 걸 받아들여 꾹꾹 눌러 담는 상자. 그런데 사실 탕웨이 배우는 여왕이다(웃음). 뚜벅뚜벅 걸어와서 척, 하고 악수를 청하는데 그 모습을 정말 좋아한다. 시력이 5.0은 돼서 넓은 평야를 보고 있는 것 같은 그런 사람. 처음 탕웨이 배우를 캐스팅하고 나서, ‘너무 기뻐서 15년 충무로 인생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라고 그에게 말했다. 그랬더니 가까이 오라고 하고는 안아주더라. 근데 보통은 자기가 다가와서 안아주는 거 아닌가? 포옹을 하사하는 느낌이랄까. ‘내가 너에게 축복 같은 포옹을 주리라(웃음).’ 그러면 우리는 또 너무 겸손하게 포옹을 당하는 거다. 그런 사람이다.

 

 

 

한 인터뷰에서 해준의 불면증을 ‘죽음과 가까워지는 모습’에 비유했다.

박찬욱 감독도 불면증이 있다.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할 때부터, 영화가 다 만들어진 이후에도 깊게 잠을 자지 못한다. 양을 밤새 지켜야 하는 양치기가 숙면을 할 수 있겠나? 해준도 그런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다. 지킬 게 있는 사람이니까 예민하게 깨어 있지만, 자기를 돌볼 에너지가 없어서 잠을 못 자는 사람. 그런데 영화를 보니 이건 죽어서 완전히 바닥에 누워야 끝나는 불면인 거다. 잠에 끝없이 가까워지려는 그 모습이 또 다른 수평 행위인 죽음을 가까이에 두고 있는 모습처럼 보였다. 해준은 자신이 가진 것들을 지키기 위해 내면의 야생성과 생명력을 잃었고 그게 해준의 존재를 죽음으로 끌고 간다. 그런 해준을 구제해주는 인물이 문명 밖, 야생의 세계에서 온 서래다. 그래서 나는 서래가 죽으면서 해준의 생명을 회복시켜줄 거라고 생각했다. 영화의 엔딩 이후에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모르지만, 해준은 불면증이 사라졌을 거다.

 

 

맨 왼쪽부터 영화 〈친절한 금자씨〉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박쥐〉 〈아가씨〉 〈헤어질 결심〉의 각본.ⓒ교보문고

 

그런 것치곤 폭력적인 장면을 너무 잘 그린다.

쉽기 때문이다. 관객에게 우정에 대해 말하려면 많은 것들을 쌓아서 설득해야 한다. 하지만 칼로 찔리는 폭력을 보면 우리 뇌가 번개처럼 그게 뭔지 안다. 다 같이 즉각적으로 고통을 느낀다. 감독은 다른 사람들과 살갗 밑의 통증을 공유하고 그걸로 소통하려고 했던 거다. 감독의 언어가 〈올드보이〉 같은 파충류의 방식에서 〈헤어질 결심〉처럼 운명적인 감정을 느끼는 멜로에 이르기까지 발달 단계를 거쳤다고 본다.

 

 

하루 목표량을 정해놓고 글을 쓰나?

글쓰기는 암벽등반과 비슷하다. 오늘은 여기까지 가야지 하고 오전에 목표를 정해두고 다양한 루트를 점검한다. 오늘은 이만큼을 이렇게, 안 되면 내일은 이만큼을 저렇게. 아, 그런데 최근에 엄청난 발견을 했다. 이렇게 하면 누구나 쓸 수 있다. 일상적인 몇 가지 루틴들을 하기 전에 딱 다섯 줄만 쓰는 거다. 씻기 전에 다섯 줄, 산책하기 전에 다섯 줄, 식사하기 전에 다섯 줄. 이렇게 다섯 줄씩만 모아도 엄청 모을 수 있다. 이 방법으로 최근에 마감을 잘 마쳤다.

 

 

새가 모이를 모아 먹는 느낌이다.

사람이 글을 쓰는 것은 인간 본성에 반하는 일이다. 글을 쓰려고 자리에 앉으면 우리 뇌가 여러 가지 생각들을 내보낸다. 어제 만난 그 사람은 성격이 왜 그럴까부터 시작해서 어렸을 때 일, 내가 왜 그때 그 음식을 좋아했을까 이런 것까지. 보통 사람들은 이런 것들이 떠오르면 ‘안 돼, 집중해서 일하자’ 이런다. 그게 안 되면 ‘나는 망했어, 나는 게을러’ 이러면서 좌절한다. 근데 그냥 이런 생각들이 다 지나가야 한다. 건물로 따지자면 제일 밑에 있는 지하실이거나 꼬불꼬불 계단을 올라가면 나오는 다락방까지 가야 글을 쓸 수 있는 거다. 대문을 넘어 추억의 방, 분노의 방, 걱정의 방을 다 지나야 한다. 주로 오전에 하는 게 이런 일인 것 같고 오후에는 그 방을 다 지났기 때문에 쓸 수밖에 없다. 캐릭터와 나 자신만 있는 그 방에 들어가면 글이 시작된다.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8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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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자기 믿음에 따른 우주를 가진다.
- 정유정, <완전한 행복>

https://brunch.co.kr/@closer0927/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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